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지급된 스마트워치도, 경찰의 신변 보호조치도 한 여성의 목숨을 지키지 못했다.
스토킹과 교제 폭력 신고가 여러 차례 접수됐고, 보복 범죄 우려까지 인정됐지만 피해자는 길거리에서 흉기에 찔려 숨졌다. 위급한 순간 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 하는 현행 보호 체계가 과연 스토킹 범죄를 막는 데 충분한지를 두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제주에서 12일 새벽 40대 여성이 쓰러진 채 스토킹·교제폭력 신고 대상인 60대 남성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고 있다. 이후 이 여성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제주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제주시 연동의 한 호텔 앞에서 40대 여성 A씨가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스토킹과 교제 폭력 신고 대상이었던 60대 초반 남성 B씨였다. 경찰의 신변 보호조치를 받던 A씨는 길거리에서 갑작스러운 습격을 당했다.
경찰 조사에서 B씨는 A씨가 자신의 전 애인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사이의 폭력은 이번 사건으로 갑자기 불거진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5월 중순 B씨에 대한 최초 교제 폭력 신고가 접수된 이후 수차례에 걸쳐 교제 폭력과 스토킹 관련 신고가 이어졌다.
이에 경찰은 지난달 16일 A씨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보복 폭력 피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B씨를 112신고 시스템상 안전조치 관리 대상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위험성을 인지하고 피해자 보호에 나섰지만, 범행을 막지는 못한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대목은 A씨가 위급한 순간 스마트워치로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갑작스럽게 흉기를 휘두르는 B씨의 습격을 받은 A씨는 긴급 버튼을 누를 틈도 없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가 위험을 감지하고 직접 구조를 요청해야 하는 보호 방식의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사건 당시 주변에는 목격자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어두운 새벽에 폭우까지 쏟아지면서 이들은 B씨가 A씨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상황을 단순 폭행으로 오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경찰에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위협이라는 사실은 제때 파악되지 못했다.
스마트워치는 위급 상황에서 피해자가 긴급 버튼을 누르면 112 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되고, 실시간 위치정보가 경찰에 전달되는 장치다. 위험에 처한 피해자가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경찰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피해자가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상황까지 대비하기는 어렵다.
SOS 스마트 워치. AI로 생성한 이미지.
이 때문에 스토킹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신고를 기다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가해자의 접근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는 적극적인 보호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가 발생한 뒤 신속하게 출동하는 것만으로는 피해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경찰의 출동에도 물리적인 시간은 필요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신고 접수 시각과 경찰 현장 도착 시각이 확인되는 5건의 평균 출동 시간은 4분 32초였다. 긴급한 스마트워치 신고는 최우선 출동이 필요한 '코드0'으로 분류되지만, 신고가 접수된 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까지 없앨 수는 없다.
경찰이 피해자를 일대일로 상시 보호하지 않는 이상 신고와 출동 사이의 공백은 불가피하다. 특히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는 몇 분의 지연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피해자가 위험을 알리는 순간부터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야 하는 구조라면, 신변 보호조치만으로는 범죄를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스마트워치가 피해자의 직접적인 조작을 전제로 하는 수동적 신고 수단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번 제주 사건과 관련, 스마트워치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수동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는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그사이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피해자 보호가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