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 등 애착유형으로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설명하고, 심리학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는 일도 익숙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마음을 돌보기 위한 심리학적 조언이 오히려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지식과 조언이 오히려 스스로에게서 결함을 찾고 이를 교정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돌보기 위해 접한 심리학이 또 다른 자기비난의 기준이 되는 역설이다.
마음을 돌보기 위한 심리학 조언이 오히려 현대인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10일 '세계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경험에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명상과 마음챙김 등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심리학과 철학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삶을 이해하려는 관심은 서점가에서도 확인된다. 교보문고의 2026년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에는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14위), '완벽한 원시인'(15위), '위버멘쉬'(16위), '다크 심리학'(24위),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25위), '니체의 초월자'(29위) 등 심리·철학 서적이 이름을 올렸다.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심리학은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해석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애착유형이다. 애착유형은 친밀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정서적 반응과 관계 형성 방식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관계에서 불안을 느끼면 자신을 '불안형'으로 규정하고, 상대방이 친밀감을 부담스러워하면 '회피형'으로 해석하는 식이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는 이러한 심리학적 지식의 대중화와 마음챙김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도 주목하고 있다.
올해 2월 국제학술지 'Current Opinion in Psychology'에 실린 연구는 명상과 마음챙김 수행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 경험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명상 참여자 일부가 불안과 우울, 고통스러운 기억의 재경험을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심리학 용어의 대중화에 따른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제학술지 '이론의학과 생명윤리(Theoretical Medicine and Bioethics)'에 발표된 논문 'Unmasking therapy-speak'에서 연구진은 심리치료 용어가 일상 대화에서 부정확하게 사용되는 현상을 분석했다. 심리학적 언어가 정신건강에 관한 이해를 높이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일상 감정과 행동까지 병리적으로 해석하거나 스스로를 진단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6월 국제학술지 'Acta Psychologica'에 발표된 캐나다 연구에서는 정신건강 치료를 받으려는 16~25세 청년 57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4%가 전문가에게 진단받지 않은 정신건강 문제를 스스로 의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가운데 65%는 SNS 정보가 이러한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정신건강 콘텐츠가 대중화되면서 자신을 특정 심리유형이나 질환으로 규정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연구 참여자들은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정신건강 관련 콘텐츠를 가장 많이 접했다. 또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자주 시청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다고 의심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상대적으로 긴 영상이 이용자에게 스스로 질환을 판단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하게 만들 가능성을 제기했다.
SNS를 통한 자가진단이 전문적 진료를 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부정확한 정보에 의존하거나 특정 진단명이 자신에게 해당한다고 지나치게 확신할 경우 오히려 치료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9일(현지시각) 영국 정부가 공개한 ADHD·자폐증·정신건강 관련 조사보고서에서도 진단 증가에 따른 오진·과잉진단 가능성이 검토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잉글랜드 12~17세 청소년의 의료기관 기록상 ADHD 유병률은 2000년 0.26%에서 2025년 3.88%로 약 15배 증가했다.
보고서는 자신의 특성을 근거로 스스로 특정 질환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과 실제 임상적 진단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또 진단명이 개인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사람을 문제나 결함을 중심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강점과 가능성을 가릴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인이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관리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압박과도 맞닿아 있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이 외부의 강제가 아닌 스스로에게 부과한 성과에 대한 압박으로 자신을 소진시키는 현상을 분석했다. 이를 감정의 영역으로 확장하면 현대인은 업무와 일상에서 성취를 이루는 것뿐 아니라 불안을 다스리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의 마음까지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에도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자기계발 문화에서는 '할 수 있다'는 자기긍정 마음가짐이 강조돼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마음가짐만으로 불안과 무기력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도 나타나고 있다.
인간에게 미래를 걱정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하는 일은 중요한 인지 활동이다. 그런데 현대의 자기관리 문화에서는 '현재를 살아라', '불안을 내려놓아라'는 조언이 강조된다. 본래 마음챙김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판단 없이 알아차리는 데 가깝지만, 이를 현재에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는 과제로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게 미래를 걱정하는 자신을 또다시 탓하게 될 수 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조언과 심리학 지식이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끊임없이 관리해야 한다는 새로운 부담으로 이어지는 역설이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지만, 그만큼 현대인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도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