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해 8월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기업고객과의 신뢰 구축'을 사업 확대 방향으로 제시했다.
김 사장은 당시 사업확대 방안을 두고 "기업고객과의 신뢰를 공고하게 구축하고 결과적으로 DCM, ECM 등 전통적인 기업금융 비즈니스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대규모 자금 수요를 해결하며 맺은 관계를 회사채 발행과 유상증자 등으로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김 사장이 이끄는 메리츠증권의 기업금융 사업이 거래 대상과 업무 범위를 함께 넓히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SK그룹과 셀트리온홀딩스 등의 자금조달에 참여한 데 이어 신세계프라퍼티의 해외 투자 재원 마련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에코프로비엠 유상증자에서는 공동주관사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에는 발행어음 인가를 받으면서 기업금융 확대에 활용할 조달 수단도 추가했다. 부동산금융에서 쌓은 강점을 유지하면서 다른 기업금융 업무의 비중을 높이려는 김 사장의 전략에 자금조달 기반이 더해진 것이다.
김종민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기업금융 부문에서 고객들과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 신세계 1조 사모채 인수 추진, 대기업 투자·재무구조 개편 수요로 넓어진 거래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은 최근 대기업의 사업 재편이나 신규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거래의 접점을 늘려나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바로 최근 공개된 신세계그룹의 대형 투자에 참여한 것이다.
신세계그룹은 6일 신세계프라퍼티가 미국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주도하는 워너브라더스 인수에 10억 달러를 간접 투자한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엘리슨 회장과 미국 투자운용사 레드버드 등이 참여하는 거래다.
이번 거래는 메리츠증권이 사모회사채를 인수해 신세계프라퍼티의 투자 재원 조달을 지원하는 구조다. 사모채의 금리 등 세부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메리츠증권은 사모회사채와 전환사채, 주가수익스와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의 자금조달에 참여하고 있다. 메리츠금융그룹 차원에서는 전환우선주 인수를 통한 대규모 자금 공급에도 나섰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자회사 유동화 거래에 참여했다. 나래에너지서비스와 여주에너지서비스가 발행한 총 3조 원 규모 전환우선주(CPS)를 메리츠금융그룹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넥스젠에너지 제1·2호가 인수하는 구조다. SK이노베이션은 발전 사업 운영을 이어가면서 재무구조 개선에 쓸 자금을 확보했다.
올해 2월에는 한국투자증권·신한투자증권·SK증권과 함께 지주회사 SK가 SK바이오팜 지분을 활용해 추진한 약 1조2500억 원 규모의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에 참여했다.
셀트리온홀딩스와의 거래도 있다.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 메리츠캐피탈은 지난해 8월 셀트리온홀딩스가 발행한 5천억 원 규모 전환사채(CB)를 나눠 인수했다. 메리츠증권의 참여액은 전체의 절반인 2500억 원이었다. 같은 해 12월 셀트리온홀딩스가 발행한 2500억 원 규모의 CB도 메리츠금융그룹이 전량 인수했고, 이 가운데 메리츠증권 몫은 1250억 원이었다.
메리츠증권의 기업금융 사업은 투자은행(IB) 부문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25년 실적발표 기준 메리츠증권의 IB 부문 순영업수익 가운데 기업금융 부문 비중은 46%에 이른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2월 열린 2025년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기업금융 부문과 관련해 "기존 부동산금융을 유지하면서 기업금융에도 인력과 자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큰 거래로 맺은 관계, 유상증자·회사채 업무로 확장
김 사장이 제시한 다음 단계는 대형 자금조달 거래를 통해 확보한 기업과의 접점을 전통적인 투자은행 업무로 넓히는 것이다.
메리츠증권은 그동안 직접 자금을 공급하거나 복잡한 거래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기업금융 사업을 전개해 왔다. 김 사장은 이러한 강점을 회사채 발행 주관이나 유상증자 등으로 연결해 기업 고객에게 제공하는 금융서비스의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최근 에코프로그룹과의 거래에서는 이러한 업무 영역의 확대를 확인할 수 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9월 에코프로가 에코프로비엠 지분을 활용해 진행한 8천억 원 규모의 주가수익스와프(PRS) 거래에 참여했다.
이후 메리츠증권과 에코프로그룹의 거래 관계는 계속 확대됐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9월 에코프로가 발행한 총 950억 원 규모 사모채의 발행대리인을 맡았으며 10월15일 청약이 시작되는 에코프로비엠 유상증자에도 참여한다. 같은 기업집단 안에서 거래 접점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이러한 기능을 담당할 조직을 확대하기도 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상반기 기업금융본부와 ECM솔루션본부, 종합금융본부 등을 신설했다. 김 사장은 당시 실적발표에서 전문인력을 확보해 조직 구성을 마쳤으며, 새로 합류한 인력과 기존 조직의 협업이 SK 거래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 국내 9번째 발행어음 사업자 인가, 기업금융 수익 확대 위한 기반 마련
기업 고객에게 제공할 금융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자금조달 기반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3일 메리츠증권을 자기자본 4조 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하고 단기금융업을 인가했다. 메리츠증권은 국내 증권사 가운데 아홉 번째 발행어음 사업자가 됐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체 신용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 금융상품이다.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해 조달한 자금을 기업금융 등에 운용할 수 있어, 증권사의 조달원을 넓히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메리츠증권의 올해 6월 말 별도 기준 자기자본은 8조3495억 원이다. 여기에 자기자본의 200%인 발행 한도를 적용하면 이론상 약 16조7천억 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조달 규모는 향후 상품 판매에 따라 결정된다.
발행어음 운용 방향도 기업금융 확대에 맞춰져 있다. 김 사장은 지난해 8월 열린 2025년 상반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발행어음으로 조달하는 자금을 기업금융과 모험자본 공급에 집중하고, 리테일 고객을 중심으로 조달원을 다변화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김 사장은 삼성증권을 거쳐 메리츠화재에서 자산운용 부문을 맡으면서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해외 대체투자, 기업대출 등을 다뤘다. 메리츠금융지주 그룹운용부문 부사장을 겸임한 뒤 2024년 7월 메리츠증권 기업금융·관리 담당 각자대표로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