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 MSD의 '키트루다SC'가 미국 할로자임테라퓨틱스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유럽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키트루다SC는 알테오젠의 피하주사(SC) 제형 변경 플랫폼 '하이브로자임'이 적용됐다.
이에 따라 키트루다SC는 벨기에·덴마크·프랑스·아일랜드·이탈리아·스웨덴·스위스·네덜란드 등 유럽 8개 나라에서 판매가 금지됐다. 2025년 12월 독일 법원에서도 예비적 금지명령이 내려진 바 있어, 현재 키트루다SC 판매에 제동이 걸린 나라는 9개국으로 파악된다.
전태연 알테오젠 대표이사 사장 ⓒ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이번 소송은 할로자임이 키트루다SC에 적용된 알테오젠의 인간 히알루로니다제(ALT-B4) 기술이 자사의 특허(EP622)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현재 이 소송의 주체는 MSD여서 알테오젠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다만 이번 소송으로 키트루다SC 판매에 따른 마일스톤(기술료) 유입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알테오젠의 단기 실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사 전태연 대표이사 사장에게는 이 같은 변수에 대처하면서 실적 전망에 미치는 영향을 투자자들에게 설명해 나가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아울러 소송이 장기화하거나 특허 리스크 영향이 현실화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알테오젠과 MSD의 키트루다SC 관련 계약은 '선(先) 마일스톤 후(後) 로열티' 구조로 돼 있다. 총 10억 달러 규모의 판매 마일스톤을 수령한 후 순매출에 연동되는 '판매 로열티' 구조로 전환되는 방식이다. 알테오젠은 8월 첫 판매 마일스톤 2500만 달러 수령을 공시한 바 있다.
◆ 알테오젠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
12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은 할로자임이 보유한 엠다제(MDASE) 특허 EP 2,797,622(EP622)를 MSD의 키트루다SC가 침해한다고 판단하고, MSD의 유럽 내 제조·판매 행위를 제한하는 명령을 7일(현지시각) 내렸다.
엠다제는 피하주사(SC) 제형 변경에 쓰이는 할로자임의 인간 히알루론산 분해효소 기술이다
이번 결정은 벨기에·덴마크·프랑스·아일랜드·이탈리아·스웨덴·스위스·네덜란드 등 8개국에 적용된다. 이에 따라 이들 나라에서는 키트루다SC의 제조와 판매, 수입, 재고 보유가 금지된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헤이그 지방법원은 특허 전속 관할 법원으로 피고의 본사나 주요 영업소가 네덜란드에 소재하고 있으면 다국적 판매금지 명령(Cross-border Injunction)의 효력을 갖는다. 다만 현재 덴마크, 프랑스, 스웨덴, 스위스에서는 별도로 무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번 결정에 대해 MSD 쪽은 "MSD는 법원 결정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으며, 할로자임의 특허가 전 세계적인 무효이고 특허 침해 주장 역시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다"면서 "MSD는 후속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법원에서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알테오젠 쪽은 "이번 특허 소송과 관련한 각국의 법적 절차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회사와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대응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이번 결정이 알테오젠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우선 알테오젠은 자체 추산 결과 8개국의 키트루다 매출 비중이 전체의 6~8% 정도이며 키트루다SC의 비중은 더 작다고 설명했다. 키트루다의 유럽 비중이 17%에 그쳐 글로벌 매출 영향이 한 자릿수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아울러 시장이 훨씬 큰 미국에서 올해 할로자임의 특허에 대한 무효판단이 나온 점, 유럽 국가 중 영국에서 할로자임이 EP622 특허 포기에 동의한 점도 MSD와 알테오젠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미국 특허심판원(PTAB)은 MSD가 할로자임의 엠다제 관련 특허에 대해 제기한 15개 특허무효심판(PGR) 또는 당사자계 무효심판(IPR) 중 5건에 대해 무효 결정을 내렸다. 나머지 10건은 아직 심사 중이다. 또 할로자임은 5월 영국에서 자사 유럽 특허의 영국 지정권 취소(포기)에 스스로 동의했다. 영국 법원은 할로자임에 구체적인 침해 증거를 제출하라고 명령했으나 할로자임은 근거를 대지 못했다.
◆ 소송의 쟁점
이번 소송의 쟁점은 크게 △구조적 요건(아미노산 치환 위치 일치 여부) △기능적 요건(페놀 환경에서의 안정성) 등 두 가지였다. 즉 특정 위치의 아미노산 치환을 포함하는지, 페놀계 보존제 환경에서 자연상태 효소보다 높은 안정성을 보이는지가 핵심이다.
우선 할로자임은 알테오젠의 ALT-B4가 자사 특허(EP622)에 명시된 특정 아미노산 변형 구조를 포함하고 있어 특허 침해라고 주장했다. 반면 MSD는 ALT-B4가 자연상태의 히알루론산 효소(PH20)와 비교해 총 15개의 아미노산 치환이 일어난 독자적인 구조라고 대응했다.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은 ALT-B4의 15개 치환 중 5개의 아미노산 치환 위치가 EP622 청구항에 규정한 요건과 일치하고 특허에서 제외한 구조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ALT-B4가 특허 범위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또 할로자임은 ALT-B4가 자연상태 효소보다 페놀 안정성이 높은데, 이는 EP622 특허의 권리인 '페놀계 보존제 환경에서 자연상태 효소보다 높은 안정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MSD는 실제 출시된 키트루다SC 제형에 페놀계 보존제가 들어가지 않아 페놀 안정성이라는 특허 기술을 완제품에서 전혀 활용하지 않았으므로 비침해라고 주장했지만, 헤이그 법원은 할로자임이 제출한 외부 비교 시험 데이터를 인용해 ALT-B4가 자연상태 효소 대비 확연하게 높은 페놀 안정성을 보이는 것이 증명됐다며 할로자임의 손을 들어줬다. 페놀 안정성을 EP622가 권리를 갖는 특정 기능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법원이 특허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해 할로자임의 손을 들어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나증권 김선아 연구원은 12일자 리포트에서 "할로자임의 EP622 청구항 1은 나열한 66개 아미노산 중 1개만 바꿔도 페놀 보존제(m-cresol) 환경에서 자연상태 효소 대비 안정성이 유지된다고 주장하지만, 실험 데이터에서 실제로 안정성이 유지된 돌연변이는 하나(F204P)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즉 특허는 66개 아미노산 위치에서의 변형을 폭넓게 포괄하지만 공개된 실험에서 안정성이 유지된 변이는 하나뿐이어서, 제시된 실험 결과가 이처럼 넓은 권리 범위를 충분히 뒷받침하는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또 김 연구원은 "독일은 신청 2개월 만에, 네덜란드는 심리 후 3개월 만에 결정이 나왔는데, 무효 여부를 증거자료로써 제대로 다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반면 미국의 경우 청구일로부터 무효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심리 개시 결정에만 약 6개월이 걸렸고, 2025년 6월에 심리를 개시해 1년 후인 2026년 5월에 무효심결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 법원 명령문에서 독일 연방특허법원이 독일 특허가 유효하다고 잠정적으로 판단한 점을 결정 근거로 내세운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봤다.
엄민용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8일자 코멘트에서 "네덜란드와 독일 법원의 결정은 할로자임이 구체적인 기술적 입증 자료를 충분히 제출하지 않았음에도 승소한 사례"라며 "항소심에서 법원이 구체적인 특허 침해 자료 제출을 엄격하게 요구할 경우, 할로자임의 기술적 근거 부족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PTAB에서 할로자임이 너무 광범위한 권리를 주장했다(서면기재 요건 결여)는 이유로 핵심 특허를 무효로 판정한 점 △영국 법원이 할로자임에 구체적인 특허 침해 증명 자료를 요구하자 할로자임이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영국 특허 취소에 동의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증권사들이 보는 다음 분수령은 11월19일로 예정된 독일 가처분 항소심이다. 김선아 연구원은 "독일이나 이번 결정 대상국 중에서 한 곳이라도 EP622 무효를 선언하면 판세가 빠르게 바뀔 것 같고, 긍정적인 소송 결과를 전망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