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억 달러(약 27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의 세부 내용이 결정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형 원전(노형 APR1400)이 미국 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한다.
제도적 한계를 넘어 원전 종주국인 미국에 진출하면서 한국형 원전의 경쟁력도 한층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한국 기업들의 미국 원전기술기업 웨스팅하우스 지분확보와 관련한 세부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은 여전히 과제로 남게 됐다.
한국형 원전(노형 APR1400)이 원전 종주국인 미국 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한다. 사진은 APR1400 노형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4호기 전경. ⓒ한국전력공사
1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날 한미 전략 프로젝트로 ‘텍사스 가스복합화력 발전 프로젝트’,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등 세 건의 사업에 관한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한국과 미국은 이번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를 통해 원전 사업의 큰 틀을 확정했다.
두 나라는 한미전략투자 기금 1200억 달러를 활용해 미국 내 대형원전 8기를 건설하고 기업 사이 협력을 도모하기로 약속했다.
특히 대형원전 8기에는 미국형 원전인 웨스팅하우스의 노형 AP1000 6기와 함께 한국형 원전 APR1400 2기가 포함됐다. 원전 종주국인 미국에 최초로 지어지는 해외 노형이 한국형 원전이 되는 것이다.
당초 한국형 원전은 양국 기업들이 체결한 타협협정(SA)에 따라 미국 진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국 에너지부, 주정부, 의회, 원전업계 등과 폭넓게 접촉한 뒤 미국 측과 치열한 협상 끝에 한국형 원전의 미국 진출이라는 성과를 얻어 냈다.
이번 미국 진출에 따라 정부는 제3국에서 한국형 원전의 신뢰도와 수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미국형 원전 건설에도 한국의 시공사 및 기자재 기업이 참여한다. 한국의 첫 번째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원전이 1978년 웨스팅하우스의 기술로 건설된 뒤 약 50년 만에 한국 기업이 웨스팅하우스와 파트너가 돼 미국에 원전을 짓는 것이다.
원전 8기 건설에 활용되는 재원은 건설비용 1천억 달러와 예비비 200억 달러로 구성된다.
두 나라는 미국형 원전 사업에서 발생하는 상업적 이익을 한미 사이 공유하기 위한 한국 기업들의 웨스팅하우스 지분인수도 공식화했다. 다만 지분인수와 관련한 구체적 투자조건 등은 향후 기업 사이 협상을 통해 확정된다.
두 나라는 앞으로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에 기반해 부지, 사업구조, 건설 일정 등 개별 프로젝트를 구체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가장 먼저 추진되는 텍사스 가스복합화력 발전 프로젝트는 기존에 알려진 대로 총사업비 223억 달러 규모로 추진된다. 이 사업은 미국 텍사스주 엔시날 지역에 6472MW(메가와트) 용량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가스복합화력 발전소를 건설 및 운영하는 프로젝트다. 2029년 1단계 상업운전을 시작으로 2032년 전체 설비 가동을 목표로 진행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향후 검토 과정을 거친다.
이 사업은 알래스카 북부의 천연가스를 남부 지역까지 운송하기 위한 대규모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수출을 위한 LNG 터미널을 짓는 프로젝트다.
두 나라는 상업적 합리성 요건, 관련 국내법상 조건이 충족되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추진 여부를 판단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검토 결과에 따라 사업이 추진된다면 미국 정부는 한국 기자재 및 공급기업에 우호적 참여 여건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 세 건의 프로젝트는 지난해 7월 ‘한미 무역합의’ 및 같은 해 11월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의 후속조치다.
정부는 에너지 등 전략산업에서 두 나라 사이 협력을 확대해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하고 경제안보 협력까지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AI, 원전, LNG 등 미래 산업과 경제안보에 직결된 전략 분야에서 한미 양국의 강점을 결합해 사업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협력의 지평을 열 것”이라며 “국익을 최우선으로 합리적 사업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한편 우리 기업의 성장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