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EU 역내에서 생산된 전기자동차에 세제 등의 혜택을 주는 법안을 검토하면서 일본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 법안은 중국 전기자동차를 겨냥한 EU 보호무역 정책의 일환이지만,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이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어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커졌다. 현대자동차는 이 법안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는 전망이다.
유럽연합(EU) 깃발이 2026년 9월17일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 의회 본부 루이즈 바이스 건물 앞에서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AFP통신=연합뉴스
닛케이아시아는 29일 "(EU가 검토하고 있는) 산업 가속기 법안(IAA) 초안에 따르면 EU에서 생산된 제품에 우대 조치가 적용된다"며 "이 법안에 따르면 전기차가 보조금 및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부품의 70% 이상을 EU에서 생산하고 차량을 EU 내에서 조립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IAA는 12월까지 유럽의회와 EU 이사회에서 각각 심의될 예정이다. 유럽의회 의원들은 오는 30일까지 IAA 수정안을 제출해야 하며, 통과될 경우 IAA는 이르면 2028년부터 발효된다.
유럽에서는 통상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업무용 차량을 제공하며, 이런 차량에는 세금 감면 혜택이 적용된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등록된 신차의 약 60%가 회사 차량이다.
그러나 IAA가 시행되면 EU 비회원국에서 제조된 전기차는 회사 차량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EU 외 국가에서 생산된 전기차를 구매하는 개인도 정부 구매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일본은 EU와 경제 파트너십 협정을 체결했지만, IAA는 일본산 전기차를 예외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일본 정부와 일본자동차협회 대표단 약 40명은 16일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 본회의장에서 유럽의회 내 최대 정당인 유럽인민당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한 일본 자동차 회사 임원은 닛케이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유럽 사업이 붕괴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전기차 시장은 앞으로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 데이터 분석 기업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에서 전기차는 272만 대가 판매돼 자동차 시장 점유율 18%를 기록했다.
글로벌데이터는 유럽의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2035년에는 85%, 2038년에는 98%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IAA의 영향은 이 전망에 반영되지 않았다.
일본 자동차 기업은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10~11%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 부문에서는 일본 자동차 기업의 점유율이 약 2%에 불과하다.
IAA 법안은 유럽 내 제조업체를 중국 경쟁업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발의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시장조사기관 이노베브는 올해 2월, 2025년 중국 업체의 전기차가 유럽의 전체 전기차 판매량 가운데 11.5%를 차지했으며 중국 업체의 전기차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9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지리자동차가 소유한 볼보의 판매량까지 합치면 2025년 유럽 전체 전기차 판매량 가운데 중국 업체의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15.5%로 증가한다.
이에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유럽 내 공장 인수를 늘리며 대응에 나섰다. 중국 전기자동차 기업 리프모터테크놀로지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 스텔란티스와 합작 투자 법인을 설립해 스페인 공장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반면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유럽 시장용 전기차 생산 시설은 대부분 유럽 외 지역에 거점을 두고 있다. 토요타가 EU에서 판매하는 12개 전기차 모델 가운데 대부분이 일본 및 기타 국가에서 생산된다.
다만 토요타의 경우 프랑스와 포르투갈에서 조립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8년까지 체코에서 전기차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스즈키는 헝가리에 공장이 있지만, EU에 판매하는 전기차를 대부분 인도 공장에서 수입하고 있다. 닛산자동차는 영국 북부 공장에서 주력 전기차인 리프를 생산하고 있다.
일본 컨설팅 그룹 아울스컨설팅그룹의 하뉴다 케이스케 최고경영자(CEO)는 닛케이아시아에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IAA의 세부 내용을 이해하고 공급망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IAA가 한국 현대차그룹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기업평가는 3월6일 발표한 리포트에서 현대자동차는 체코와 튀르키예에, 기아는 슬로바키아에 현지 생산 거점을 운영하고 있어 IAA가 최종 발효되더라도 전기차 판매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한기평은 이어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판매한 EU 내 규제 대상 차량 가운데 약 45%가 현지에서 생산됐다고 짚었다. 또 현대차와 기아차를 합산하면 유럽에서 80만 대 이상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