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 재제청 요구를 거부한 지 한 달째, 양측 대치가 10월 국정감사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헌법상 명확히 서열화돼 있지 않은 틈에서, 국민이 직접 뽑지 않은 사법수장의 헌법해석이 선출권력인 대통령의 인사권을 사실상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은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출근길에서 재제청 거부와 관련해 "국정감사 등을 통해 이야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갈등은 8월18일 조 대법원장이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서면'으로 제청하면서 시작됐다.
종전엔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예방해 사전에 조율한 뒤 제청하는 관례가 있었지만,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와 합의 없이 서면 제청을 밀어붙였다.
이에 청와대는 8월28일 "실질적 협의 없는 일방적 제청"이라며 임명동의안 제출을 거부하고 재제청을 요구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재명 대통령 순방 중이던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온 요청 문서에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재차 거부했다.
청와대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헌법에 위배되는 인식이다"고 반박했다.
문제는 헌법 104조 2항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충돌할 때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았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대법원장 지위의 민주적 기반이다.
대법원장은 국민의 투표가 아니라 대통령의 지명과 국회의 동의로 임명되며 임기 중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반면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아 임기 내 책무를 부여한 이른바 선출 권력이다. 민주적 정당성에서 대법원장과 대통령은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1조2항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못박고 있다. 그리고 그 국민이 대통령에게 권력을 줬다. 이를 민주적 정당성이라 부를 것이다.
이런 민주적 정당성에 비춰 볼 때,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 수장이 헌법 공백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선출 권력의 인사권을 지연시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할 수 없다.
물론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도 헌법이 부여한 독립적 권한이며, 행정부가 원하는 인물이 나올 때까지 무한정 재제청을 요구하면 제청권 자체가 형해화 된다는 반론도 타당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자리는 200일 넘게 공석 상태이며, 이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어느 쪽의 권한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느냐가 아니다. 헌법이 명확히 정하지 않은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충돌할 때 이를 조정할 절차와 기준이 마련돼 있느냐는 문제다.
사법부의 독립은 존중돼야 하지만, 그 독립성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과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대통령의 임명권도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무시할 수 있는 무제한의 권한으로 볼 수는 없다.
결국 양측의 권한 다툼이 길어질수록 그 사이에서 대법관 공석이라는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국민이다.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가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권한을 앞세우는 일이 아니라 선출권력과 사법부가 각자의 권한과 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는 일이다.
특히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유지돼 온 대법관 제청과 임명 절차가 논란의 중심에 선 만큼, 조희대 대법원장도 자신의 제청권을 무기로 휘두를 것이 아니라 그 권한이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헌법적 가치 위에서 행사돼야 한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사법부의 독립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사법부의 독립은 민주주의, 국민의 뜻 머리 위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킬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