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 골목에 위치한 뉴발란스 매장에는 러닝복과 러닝화를 대여하거나 짐을 맡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경복궁 돌담길부터 창성동과 통의동을 거쳐 서촌·북촌으로 이어지는 러닝 코스가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을 따라 스포츠 브랜드 매장이 들어서고, 카페와 음식점도 뒤따른다. 러너의 발걸음을 따라 운동과 소비가 한 동선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마라톤 대회 출발선에 참가자들이 모여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나온 달리기 관련 조사와 통계를 종합하면 러닝 열풍이 운동을 넘어 관련 소비로 확산하고 있다. 2026년 상반기 국내에서 열린 10㎞·하프·풀코스 마라톤 대회만 224개였고, 참가자는 79만8438명에 달했다. 유통업계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생활체육조사를 바탕으로 국내 러닝 인구가 1천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러닝 인구가 늘면서 관련 소비도 빠르게 커졌다. 아식스코리아의 매출은 지난해 1866억 원으로 3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고, 뉴발란스의 지난해 국내 매출도 1조2천억 원으로 1년 전보다 20%가량 늘었다. 특히 뉴발란스의 러닝화 라인 매출은 같은 기간 109% 증가했다. 가을을 앞두고 러닝웨어 수요도 늘고 있다. 무신사에 따르면 9월 1~9일 러닝 바람막이 검색량은 전월 같은 기간보다 4.4배 증가했고, 러닝 장갑과 러닝 롱슬리브 검색량도 각각 215%, 155% 늘었다.
시장이 커지면서 유통업계가 주목하는 지점도 달라지고 있다. 러닝화와 의류를 얼마나 팔 수 있는지를 넘어 러너들이 어느 코스를 반복해서 찾고, 달리기 전후 어디에 머무는지를 새로운 소비 기회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스포츠 브랜드는 러닝 코스 인근에 전문 매장과 체험 공간을 마련하고, 카페와 주변 상점은 달리기 전후 머무는 시간을 겨냥해 러너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런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는 곳이 서울 광화문에서 경복궁을 지나 서촌과 북촌으로 이어지는 일대다. 광화문에서 출발해 경복궁 돌담을 따라 약 2.5㎞를 달리고 창성동과 통의동을 거쳐 서촌·북촌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이 길목을 따라 러닝 전문 매장과 체험 공간이 들어서면서 운동 전후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찾는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광화문에서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창성동에는 아디다스와 프로스펙스가 자리 잡았다. 아디다스는 지난 2월 국내 첫 러닝 특화 매장을 열었고, 프로스펙스도 지난 7일 창성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통의동에는 지난 4월 국내 첫 트레일러닝 전문 매장을 연 살로몬이 있고, 서촌에는 장거리 러닝화 브랜드 마운트 투 코스트의 쇼룸도 들어섰다. 러닝화와 러닝 의류를 고르는 것은 물론 도심 러닝과 인왕산 트레일러닝 등 코스에 맞는 소비가 한 동선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매장 자체가 러닝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뉴발란스 런 허브에서는 러닝화와 의류를 빌리고 짐을 맡긴 뒤 경복궁 주변을 달릴 수 있다. 살로몬 매장은 인왕산 일대를 달리는 러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쇼핑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러닝 코스의 출발점이자 러너들의 모임 장소 역할까지 맡는 방식이다.
북촌에서는 러닝에 필요한 체험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였다. 푸마의 ‘스니커 박스 북촌점’에는 러닝랩이 마련돼 풋스캐너로 발 모양을 측정하고 트레드밀에서 달리는 자세를 분석할 수 있다. 전문 코치의 조언을 받고 운동 후에는 세면 공간에서 몸을 정돈할 수도 있다. 러닝화를 고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측정부터 착화, 주행, 코칭, 정돈까지 러닝과 관련된 경험을 한 공간에서 제공한다.
스포츠 매장을 지나 서촌 골목으로 들어서면 소비의 범위가 넓어진다. 경복궁 돌담길 주변에는 테일러커피와 카멜커피가 있고, 누하동에는 매뉴팩트 서촌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카페가 러닝을 겨냥해 들어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경복궁과 인왕산을 달린 뒤 쉬어갈 수 있는 카페와 베이커리, 소규모 매장이 러닝 코스 주변에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러너를 직접 겨냥한 카페도 등장했다. 서촌의 논도서촌은 당일 3㎞ 이상 달린 기록을 보여주면 음료를 할인해주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달린 기록을 인증하고 커피를 마시는 식으로 러닝과 카페 소비를 직접 연결한 사례다. 러너가 모이는 길을 따라 스포츠 매장뿐 아니라 카페까지 소비를 붙잡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