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자체사업인 전자BG의 규모를 2배 이상 늘리는 대형 투자를 단행한다.
박 회장은 반도체 가치사슬(밸류체인) 확대를 목표로 채권단 체제 종료 직후 두산테스나(옛 테스나) 인수라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현재 당시 기대만큼의 성장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자BG에서 이뤄진 또 다른 승부수가 향후 부침 없이 순항할지 여부는 박 회장이 AI 및 반도체를 두산그룹의 핵심 축으로 삼는 데 승부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전자BG에서 역대 두산 설비투자 가운데 최대 규모인 9700억 원의 증설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허프포스트코리아
18일 증권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두산이 사상 최대 규모의 설비투자로 동박적층판(CCL) 증설을 결정한 가운데 이 제품을 생산하는 전자BG 외형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CCL은 전자제품의 신경망 역할을 하는 인쇄회로기판(PCB)의 핵심 소재로 수지, 유리섬유, 충진재, 기타 화학물질로 구성된 절연층에 동박을 적층한 제품이다. 부품 사이 전기적 신호를 손실 없이 전달하고 미세회로 사이에서도 합선을 막으며 기판의 물리적 강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CCL은 가속기, 데이터센터 등 AI 산업 주요 인프라의 핵심 부품으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CCL 발주가 ‘조 단위’로 대형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두산 전자BG의 국내 생산라인은 이미 가동률 100%를 넘어서기도 했다.
박 회장은 전날인 17일 2028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모두 9700억 원을 투자해 두산 전자BG의 CCL 생산능력 확대를 결정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국내에 4200억 원을 들여 광모듈용 CCL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중국에서는 5500억 원을 투자해 AI 가속기, 네트워크 스위치용 CCL 공장을 신축한다.
9700억 원은 두산 전자BG가 4월 태국 증설에 결정한 1800억 원을 5배 이상 웃도는 데다 두산이 자체사업 분야에서 설비투자에 투입한 규모 가운데 역대 최대 수준이다. AI 시대 대응력을 강화하겠다는 박 회장의 의지와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 회장은 이번 결단을 통해 두산 전자BG의 CCL 생산능력을 2배 이상 늘릴 수 있을 거승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증권업계에서는 전날 결정된 두산 전자BG의 국내 및 중국 투자, 4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태국 투자를 합하면 향후 추가될 CCL 생산능력이 매출 기준 4조 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두산 전자BG의 매출 전망치가 2조8천억 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현재 사업 규모를 뛰어넘는 추가 투자가 이뤄지는 셈이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18일 두산 분석보고서에서 “두산 전자BG는 투자를 통해 현재 단가 기준 매출 규모로 4조2천억 원가량의 생산설비를 2029년에 더한다”며 “현재 가동률이 100%를 초과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전자BG 사업 하나를 더 만드는 규모의 증설”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두산 전자BG CCL 증설'은 AI 및 반도체 시장으로 두산그룹의 핵심 사업 축을 넓히려는 전략의 성공을 좌우할 주요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승부처로는 내년 1월31일 마무리를 목표로 인수 절차를 밟고 있는 반도체 웨이퍼기업 SK실트론의 성공적 인수 및 가동이 꼽힌다.
박 회장이 4년 전 결단을 내려 인수한 두산테스나는 최근 부침을 겪었다. 그 만큼 증설 완료 뒤 전자BG의 지속적 성장세가 두산그룹에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앞서 박 회장는 4600억 원을 들여 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기업 두산테스를 인수했다.
5천억 원에 이르는 규모뿐 아니라 당시 두산그룹이 채권단 관리체제를 졸업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됐던 ‘깜짝’ 인수였다. 2022년 2월28일 두산그룹은 23개월 만에 두산중공업 유동성 부족을 주요 원인으로 시작했던 채권단 관리체제를 졸업했다. 이어 일주일가량 지난 3월8일 두산테스나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했다.
두산테스나는 핵심 고객사인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진에 영향을 받아 인수 뒤 기대만큼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두산그룹 편입 뒤 두산테스나 별도기준 영업이익은 2022년 672억 원, 2023년 608억 원, 2024년 379억 원으로 하락세를 나타냈다. 특히 지난해는 적자로 전환해 영업손실 9억 원을 냈다.
두산테스나는 두산에 인수되기 전까지 파운드리 시장 확대와 맞물려 높은 성장세와 함께 지속적인 실적 증가세를 보였다.
다행히 현재 두산테스나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회복과 함께 실적 반등을 바라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두산테스나는 올해 별도기준 영업이익 384억 원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이번 증설 계획을 놓고 긍정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두산 전자BG가 CCL 수요 증가에 힘입어 증설 이후 공백기를 최소화하고 빠르게 실적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18일 두산 분석보고서에서 “이번 투자의 상당 부분은 고객사와 중장기 물량 협의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대규모 증설에도 향후 신규 생산설비의 높은 가동률과 실적 창출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내다봤다.
CCL을 앞세운 두산 전자BG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을 훌쩍 뛰어넘는 우수한 수익성을 기록하고 있다.
두산 전자BG는 2024년 역대 처음으로 매출 1조 원을 돌파(1조72억 원)했고 2025년에는 1조8757억 원으로 외형을 더 키웠다. 2026년에도 상반기에만 매출 1조2934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외형 성장을 뛰어넘는 수익성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 두산 전자BG 영업이익률은 2024년 12.2%에서 2025년 25.8%로 2배 이상 확대됐고 2026년 상반기에는 29.9%까지 높아졌다.
두산 관계자는 “CCL 수요 추이에 맞춰 생산능력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며 “이번 투자도 주요 고객사의 중장기 수요에 기반한 만큼 증설이 끝나면 ‘하이엔드 CCL’ 수요에 한층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