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보통 제작비가 얼마나 들까? 수십억 원은 기본이다. CG(컴퓨터그래픽스)와 대규모 액션 장면이 더해진 블록버스터는 제작비가 80억~90억 원 이상으로 치솟기도 한다. 반면 AI(인공지능)를 일부 활용한 영화 ‘중간계’의 제작비는 10억~15억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블록버스터 제작비는 때로 1천 억 원 대로 뛰기도 한다. 수배, 수십 배 차이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보통 제작기간은 얼마나 걸릴까? 기획부터 촬영, 편집, 후반작업까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대규모 CG가 필요한 장면은 완성까지 수주가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AI를 활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CG로 4~5일 걸리던 차량 폭발 장면을 AI로는 10분 안팎에 구현할 수 있다.
영화 ‘스틸레이’ 스틸컷. 라온컴퍼니플러스 제공. ⓒ라온컴퍼니플러스
돈과 시간이 많이 들수록 영화로 만들기 어려운 이야기도 많았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공상과학영화), 거대한 재난을 다룬 영화, 대규모 전투가 등장하는 액션물은 상상력만으로는 부족했다. 실제 세트와 장비, 배우, 특수효과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흥행 가능성이 불확실한 작품일수록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작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AI는 이러한 영화 제작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다. 실제 촬영 없이도 미래도시와 우주, 로봇 전투 같은 장면을 구현할 수 있고, 한 번 만든 영상을 다시 생성하거나 수정하는 과정도 기존 방식보다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결국 AI가 바꾸는 것은 영화 한 편의 제작비만이 아니다. 비싸서 만들기 어려웠던 장르와 이야기를 영화로 옮길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넓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가능성을 확인하는 사례가 나왔다. 라온컴퍼니플러스와 아이노스튜디오가 제작한 ‘스틸레이’는 기획부터 영상·음성·사운드, 후반작업까지 전 과정을 생성형 AI로 완성한 90분짜리 SF 액션영화다. 지난해 12월 제작을 시작해 약 6개월 만에 완성했으며, 제작비는 10억 원 미만이다.
로봇 군단의 도심 공격과 전투 수트 등 고비용 장면도 구현했다. 기존 영화 제작 방식과 달리 배우·카메라·대규모 세트·특수효과 장비는 동원하지 않았다. 한 번에 생성할 수 있는 영상은 최대 15초였다. 제작진은 이를 반복 생성해 최종 편집에 1만3천 개의 결과물을 활용했다. AI를 활용해 SF 블록버스터에 도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시사회 이후 나온 반응은 AI 영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보여줬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강태경 배우는 직접 캐릭터를 연기하고 자신의 얼굴을 작품 곳곳에 활용했다며, AI가 배우를 대체하기보다는 창작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우이면서 공대생 출신인 그는 AI를 활용하면 기존보다 적은 자원으로도 영화 제작에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정우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부위원장도 시사회에서 “놀라면서 재미있게 봤다”고 평가하면서도, AI가 기존 창작자를 100%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AI가 영화 제작의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는 있지만,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고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어떻게 설계할지는 여전히 창작자의 몫이라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AI 영화의 진짜 경쟁력이 드러난다. AI가 수많은 영상과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곧바로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장면의 연결, 인물의 일관성, 감정선, 이야기의 속도감을 조율해야 한다. 오히려 생성되는 결과물이 많아질수록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편집과 연출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스틸레이 역시 짧게 생성된 영상들을 단순히 이어 붙인 작품이 아니다. 수많은 결과물 가운데 영화의 흐름에 맞는 장면을 골라내고, 이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AI 시대의 영화 제작은 ‘만드는 기술’보다 ‘고르는 감각’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시장에 나오는 작품이 늘어나면 유통 방식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는 높은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극장 개봉과 대형 배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제작비가 낮아지고 작품 수가 늘어나면 모든 영화를 대규모 광고로 알리기는 어려워진다.
앞으로는 플랫폼과 배급사가 작품의 장르와 취향을 정확히 분석하고, 적합한 관객에게 연결하는 큐레이션과 추천 역량이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있다. SF·공포·판타지처럼 특정 팬층이 뚜렷한 장르 영화라면 대중 전체를 겨냥한 마케팅보다 취향이 맞는 관객을 찾아가는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결국 AI가 바꾸는 영화의 손익계산서는 제작비 항목 하나가 아니다. 영화 제작에 필요한 자본과 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좋은 작품을 선별하고 완성도 있게 다듬고 관객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역량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영화가 ‘비싸서 만들 수 없는 콘텐츠’에서 ‘만들 수는 있지만 선택받아야 하는 콘텐츠’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