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과 수십 년간 쌓인 관리 부실이 겹치며 유럽의 물 공급망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낡은 상수도 인프라 탓에 정수된 물이 가정에 닿기도 전에 새어 나가는 구조적 문제가 위기를 더 키우고 있다.
한국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심각한 물부족(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돼 있고 노후 상수관 비율도 낮지 않아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기업대출의 34%가 물집약 산업에 집중돼 있는 만큼 물부족은 산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 픽사베이
8일 유로뉴스를 비롯한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유럽연합(EU)은 상수도 누수율을 줄이기 위해 각국이 인프라 투자에 나섰지만 회원국 간 격차가 커 개선 속도가 더딘 것으로 파악된다.
유럽, 한계에 도달한 수자원 시스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6년 기준 유럽 영토의 20%, 유럽 인구의 30%가 해마다 물부족을 겪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물부족의 주된 원인으로는 유럽의 공공 공급망의 관리 부실이 꼽힌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정수된 물의 약 23% 가량이 노후 상수도 파이프에서 유실되고 있어 공급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파악된다.
유럽수자원서비스연합(EurEau)의 2026년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의 누수율은 2021년 조사 당시 24%에서 약 23.5%로 약간 감소했지만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여전히 인프라 유지보수와 관련된 투자에서 편차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은 연간 90억 유로(한화 약 14조 원), 프랑스는 65억 유로(약 10조 원)를 상수도 인프라 유지보수에 투자하는 반면 슬로베니아는 약 1억 유로(1560억 원)에 그치고 있다.
유럽의회 조사처(EPRS)는 도시화와 이민 증가로 인해 북유럽과 서유럽에서 물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상수도 인프라의 현대화와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최근 나타난 기후위기는 이런 물부족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지구관측프로그램인 코페르니쿠스에 따르면 유럽의 기온은 10년당 섭씨 0.56도 상승해 세계 평균인 0.27도보다 높다.
기후위기로 가뭄이 증가하면서 2024년에는 60만㎢의 토지가 피해를 입었고 특히 8만7567㎢의 농경지가 손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물부족이 중요한 이슈인 이유는 시민복지뿐만 아니라 산업 및 식량문제, 에너지 생산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농업은 유럽물의 31%를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물부족은 농산물 수확량 감소로 이어져 농가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고 식량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고 유로뉴스는 바라봤다.
유럽의회 조사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유럽의 작물손실량은 예상치보다 이미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식료품 가격 인상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유럽은 유럽 전체 물의 14%를 산업생산에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부족은 제철과 제지, 식품 등 수자원을 집약적으로 쓰는 산업의 가동을 중단시켜 기업의 매출을 줄이고 대출 상환을 어렵게 만들어 금융시스템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 기업대출의 34%가 물집약 산업에 집중돼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토마스 바자다 유럽의회 사회민주진보동맹 의원 겸 유럽 물 회복력 전략보고관은 유로뉴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물은 더 이상 환경적 투자가 아니다"며 "이는 시민의 복지, 유럽의 식량안보, 공중보건, 경제적 경쟁력 및 회복력에 대한 투자다"고 말했다.
한국도 노후상수도 문제로 대비 시작해야
극심한 가뭄이 이어졌던 2026년 8월16일 경남 밀양시 무안면 백안 저수지에 비가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도 노후 상수도 문제로 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OECD가 2012년 발표한 '환경전망 2050' 보고서는 한국을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심각한' 물부족(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했다. 이후로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OECD 기준으로 산출한 2025년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물 스트레스 수준(가용 담수자원 대비 취수 비율)은 85.2%로, OECD 평균(21.4%)의 4배에 달하며 이스라엘에 이어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이 수치는 2002년 이후 큰 변동 없이 고착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024년 10월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상수도 인프라의 20년 이상 노후화율은 36.4%, 하수도는 43.0%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노후화로 인한 연간 누수량은 6.7억 톤, 경제적 손실은 약 69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더구나 최근 심화되고 있는 기후위기는 이 구조적 취약성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감사원이 2023년 공개한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실태(물·식량 분야)' 감사보고서는 미래 기후위기 시나리오를 반영할 경우 한국의 2030년 물 부족량은 최대 6억2600만㎥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올림픽 수영장 약 25만 개를 채울 수 있는 규모다.
여기에 한국은 인공지능 산업의 첨단에 서있는 만큼 관련 용수가 많이 필요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1GW(기가와트)급 데이터센터는 열을 식히고 전력을 공급하는데 직간접적으로 하루 2천만 리터의 물을 소모한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와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구상에 따르면 하루 15억500만 리터의 물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약 500만 명이 하루에 쓰는 생활용수와 맞먹는 규모다.
요컨대 한국과 유럽은 노후 상수도 인프라와 새로운 산업 수요에 더해 기후위기까지 겹친 이중 부담을 지고 있다. 한국도 미래를 위해 인프라를 빠르게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