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불법 정착촌과 관련해 일체의 상품 및 서비스 거래를 막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영국이 2025년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 승인한 데 이어 가장 강도 높은 대이스라엘 압박으로 평가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에드 밀리밴드 영국 외무장관 ⓒ EPA=연합뉴스
에드 밀리밴드 영국 외무장관은 8일(현지시각) 영국 하원에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불법 정착촌 쪽과 벌이는 상품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정책을 발표한다고 영국 언론 가디언이 7일 전했다.
밀리밴드 장관은 이 자리에서 팔레스타인인의 권리와 '2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를 다시 한번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은 "밀리밴드 영국 외무장관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거센 비판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개입에 나서 불법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생산된 상품과 일부 서비스의 거래를 금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밀리밴드 "팔레스타인 권리·2국가 해법 재확인"
밀리밴드 장관은 9월1일 하원에서 이미 "영국의 대이스라엘 정책을 포괄적으로 재설정(reset)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남북으로 갈라놓을 것으로 우려되는 이스라엘의 'E1 정착촌 계획'을 저지하겠다"며 "영국 기업이 새 정착촌 건설에 자금을 대거나, 시공하거나, 광고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E1 정착촌 계획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동부와 서안지구 사이에 약 3400채 주택을 짓는 사업으로, 이 계획이 실현되면 서안지구가 두 조각으로 단절돼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영국은 이번 발표로 정착촌 상품 통관 금지를 넘어, 정착촌 활동을 뒷받침하는 금융·보험·광고 서비스와 관련 기업까지 제재 대상에 넣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제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밀리벤드 영국 외무장관이 이번에 취할 조치는 환영할 만하지만 뒤늦은 첫걸음"이라며 "정착촌 금융·건설 지원까지 실질적으로 끊지 않으면 보도자료 수준에 그칠 것이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착촌의 '불법성', 영국은 왜 등을 돌렸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유대인 정착촌. ⓒ EPA=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는 1967년 중동전쟁(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이 요르단으로부터 군사적으로 점령한 땅이다.
국제법상 '점령지'는 원래 그 땅에 살던 주민의 것으로 간주되며, 점령국이 자국민을 그곳으로 이주시켜 정착시키는 것은 금지된다. 이 원칙을 규정한 것이 1949년 제네바협약 4조 49항으로, "점령국은 자국의 민간인을 점령지로 이주시켜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 협약에 서명한 당사국이면서도 1967년 이후 지금까지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 건설해 왔고, 현재 약 70만 명이 160여 개 정착촌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제사회의 판단도 일관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6년 결의 2334호에서 정착촌을 "국제법의 명백한 위반"이라 규정했고,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04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정착촌 건설이 불법이며 이스라엘의 점령 자체도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2024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이 사실상 서안지구를 '병합'하고 있으며 이곳에 대한 주권을 가질 수 없다고 명시하면서, 모든 국가는 이 불법 상황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원조나 교역을 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 땅을 성경에 등장하는 유대민족의 고토(옛 땅)로 여기며 정착촌이 불법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국제사회와 이스라엘 사이의 인식 차는 여전히 크다.
영국의 태도 변화는 이런 국제법 판단이 쌓인 결과다.
2024년 9월 데이비드 라미 당시 영국 외무장관은 이스라엘군이 국제인도법을 위반할 '명백한 위험'이 있다며 무기 수출 허가 약 30건을 정지시켰다.
영국은 이어 2025년 9월에는 키어 스타머 당시 영국 총리가 유엔총회를 앞두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 승인해 팔레스타인의 국가성을 인정했다.
여기에 2024년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이 법적 명분을 더하면서, 영국은 이번 정착촌 무역 금지까지 단계적으로 대이스라엘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