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8·3 부동산 세제개편안이 본격 시행 이전에 집권 여당에 의해 수술대에 올랐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는 정부의 세제개편 방안에 "원칙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혀왔지만, 정작 당대표 취임 후 첫 고위당정 회동에서는 비거주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세 부담 상한 등 핵심 내용에 잇달아 반론을 제기했다.
정부도 공급 확대를 별도 방안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까지 "주거 안정의 핵심은 공급"을 앞세우며 세제 개편의 강도를 낮추려는 것으로 읽힌다.
이에 민주당이 여론을 이유로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부동산 시장 체질 개혁'을 사실상 가로막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성숙 국무총리(왼쪽)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김민석 대표와 한성숙 국무총리 등은 전날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정부가 지난 3일 내놓은 부동산 세제개편안 수정 방안을 논의하고 다음주까지 수정안의 가닥을 잡기로 합의했다. 당정은 전근·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자기 집에 거주하지 못하는 1주택자의 실거주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한발 더 나아가 1주택자에 대해서는 거주·비거주 구분 자체를 없애달라고 정부에 강하게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 대표는 종부세 세 부담 상한을 150%에서 200%로 확대하는 방안을 두고도 "깊이 있는 숙의가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현행 60%에서 70%로 높이는 방안 역시 재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김 대표의 이런 수정 요구는 단순히 비거주 1주택자의 세 부담을 덜어주는 것을 넘어, 정부가 이번 세제 개편에서 내세운 '거주 중심 과세' 원칙을 근본적으로 흔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를 준비하는 단계부터 실주거용 1주택과 비주거용 주택·다주택 소유자의 세 부담을 차등하는 방안을 핵심 의제로 제시해 왔다.
7월23일 토론회에서도 직장이나 자녀 교육 등 불가피한 사유로 자기 집에 살지 못하는 경우는 보호하되, "명백한 투기 목적의 비거주 주택"에는 세제상 불이익을 두는 방향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만약 민주당의 요구가 그대로 관철될 경우 "거주 목적 1주택은 보호하고 투자 목적의 주택 보유에는 더 부담을 지운다"는 정부 세제 개편의 기본 원칙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예외를 거듭 확대하다 정작 정책의 핵심 원칙이 빠지는 '반쪽짜리 개혁'으로 귀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강훈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23일 경향신문에 민주당의 거주·비거주 구분 폐지 요구를 두고 "기본적으로 비거주·거주 모두 과세를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극소수의 고가주택을 위해 민주당이 앞장서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한문도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이날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실거주 위주와 공정 과세라는 원칙은 가져가야 한다"며 "민주당의 거주·비거주 구분 폐지 요구를 두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특히 김 대표가 전날 회의에서 "주거 안정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공급 확대"라고 강조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제는 보조 수단이고 집값을 잡는 본질은 공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가 공급을 외면한 채 세제 조정만 앞세우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 내 용산어린이정원. ⓒ연합뉴스
정부가 올해 1·29 대책에서 공급 확대를 예고한 서울 용산구 캠프킴 부지 관련 용산공원특별법을 비롯해, 여야는 26일 재개발·재건축 사업 기간 단축과 용적률 완화를 위한 공급 확대 법안 처리를 논의하기로 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 다시 회동을 갖고 용산 일대를 활용한 주택 공급 방안에 대해 논의를 이어간다.
정부가 공급 확대 정책을 별도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세제보다 공급이 핵심'이라는 민주당 지도부의 주장이 보유세 개편 강도를 낮출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따져볼 대목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거듭 '공급 우선론'을 이번 개편안의 수정 근거로 내세운다면, 정부가 공급은 외면한 채 세제만으로 집값을 안정시키려 한다는 인상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지금은 세제 개편에 따른 시장 효과를 판단조차 하기 이른 시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효과를 검증할 만한 최소한의 시간조차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집권 여당이 먼저 핵심 조항 손질에 나선 셈인 것이다. 더구나 8·3 대책 발표 이후 초고가주택이 밀집한 강남·서초 일대 아파트값은 2주 연속 하락하는 등 정부가 겨냥한 지역에서 일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