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위산업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고성능·고가 무기'가 실제 전장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에 이어 이란과의 전쟁까지 실제로 겪으면서 최첨단 무기의 성능보다 값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무기의 중요성이 전쟁 수행 능력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화려한 첨단무기가 아닌, 가성비 무기가 전장에서 훨씬 더 중요함이 증명된 것이다.
지상 발사대에서 발사되는 PAC-3 MSE. ⓒ록히드 마틴
23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 본사를 둔 드론업체 파워러스(Powerus)는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약 5천 달러(약 690만 원)짜리 드론 요격기 '가디언(Guardian)' 생산에 들어갔다. 현재 연계 공장들은 월 3천 대가량을 생산하고 있으며, 2027년 중반까지 월 1만5천 대 규모로 생산량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번에 생산되는 가디언은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의 샤헤드 드론을 상대하며 실전 경험을 쌓은 설계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3D 프린팅 부품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마이크로칩·GPS 모듈 등을 활용하고 조립 과정도 단순화해, 현지에서 신속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드러난 기존 방공체계의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값싼 드론을 대량으로 투입하는 공격에 맞서 수십만~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고가 요격 미사일을 계속 발사하는 방식으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미 나타났던 문제이기도 하다. 전쟁 초기 러시아군이 구식 장비와 값싼 드론을 대량으로 투입하자 서방에서는 러시아를 조롱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상황은 오히려 달라졌다. 대규모 물량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이 현대전의 핵심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지난 2월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러한 문제는 더욱 선명해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랍에리미트에서는 약 3만5천 달러(약 4800만 원) 수준의 샤헤드 드론을 요격하기 위해 약 400만 달러(약 55억 원)에 달하는 요격기 PAC-3 MSE를 사용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격차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다. 이란이 값싼 드론을 수십~수백 대씩 투입입할 때 미군은 훨씬 100배가 넘는 요격미사일을 계속 발사해야 했다. 장기전에서는 비싼 만큼 무기 재고가 금방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사실 미국 방산산업이 1990년대 이후 이와같이 화려한 첨단무기를 중심의 독과점시장으로 변화했다. 미국 국방부(DOD)는 1990년대 방위예산 감축에 대응하고 방산업계의 생존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 간 인수합병(M&A)을 장려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반 51개에 달했던 주요 방산 프라임 계약자는 1997년까지 5개 수준으로 줄었으며, 현재는 이들 소수 기업이 국방부의 주요 무기 획득 프로그램 상당 부분을 수주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록히드마틴, 보잉, 노스럽그러먼, RTX, 제너럴다이내믹스 이른바 5대 방산 기업 중심으로 재편된 방산업계는 로비를 통해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방산시설과 부품 생산기지를 미국 각 지역에 분산하면서 지역 일자리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결합했고, 첨단 무기 개발과 생산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구조도 굳어졌다.
공시자료에 따르면 미국 5대 방산 기업은 2025년 기준 총 69만7천 명을 직접 고용 중이다. 록히드 마틴 12만3천 명, RTX 18만 명, 보잉 18만2천 명, 제너럴 다이내믹스 11만7천 명, 노스롭 그루먼 9만5천 명이다
그 결과 미국의 무기는 점점 더 정교해졌지만 동시에 비싸졌다. 첨단 기술이 적용될수록 개발 기간은 길어지고 생산 과정은 복잡해졌다. 그러나 막상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면서 미국이 가진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최고급 무기를 만드는 능력'과 '전쟁에 필요한 물량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문제임을 이제 확인한 셈이다.
결국 미국 방산업계도 뒤늦게 생산 방식의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26년 판버러 국제 에어쇼에서 록히드 마틴은 PAC-3 MSE의 저가형 버전으로 알려진 요격기 'PAC-3 ACE'를 공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