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다음 경영 과제가 ‘돈 마련’에서 ‘자본 배분’으로 옮겨가고 있다.
롯데그룹의 계열사 곳곳에서 막혔던 돈줄이 풀리기 시작하면서다. 돈을 마련하는 단계에서 이제는 확보한 자본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가 중요해진 셈이다.
롯데그룹은 자산 매각과 미수금 회수, 회사채 조달 여건 개선 등 계열사 곳곳에서 자금 흐름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롯데그룹 계열사 공시를 종합해 보면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사업재편이 각 계열사의 자금 흐름에도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롯데그룹은 비핵심·저수익 사업을 정리하고 수익성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한편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해왔다.
유동성 개선은 단순히 보유 현금이 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산을 현금화하고 묶여 있던 채권을 회수하며, 외부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하고 본업에서 현금을 만들어내는 힘이 커지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최근 롯데그룹에서는 이 가운데 묶여 있던 자금이 현금으로 전환되는 변화가 먼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롯데건설에서는 묶여 있던 공사대금이 회수되면서 운전자금 부담이 줄고 있다. 롯데건설이 시공한 롯데케미칼 인도네시아(LCI) 라인 프로젝트의 공사미수금은 2024년 말 728억 원에서 지난해 말 18억 원으로 줄었고, 올해 상반기에는 0원이 됐다.
5조 원대 초대형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미수금이 모두 해소됐다는 것은 그동안 묶여 있던 자금이 실제로 회수돼 롯데건설의 운전자금 부담을 덜었다는 의미다. 공사미수금은 공사 진행에 따라 매출로 인식했지만 발주처로부터 아직 현금으로 받지 못한 돈이다. 특히 대형 해외 플랜트는 공사 완료 이후 정산까지 시간이 길어질 수 있어 미수금이 장기간 남을수록 건설사의 현금흐름 부담도 커진다.
롯데건설은 외부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조달 여건도 달라졌다. 지난해 기관투자자의 주문을 한 건도 받지 못했던 회사채 시장에서 올해는 모집액의 세 배가 넘는 수요를 확보했다. 롯데건설은 지난 19일 500억 원 규모 공모채 수요예측에서 1510억 원의 주문을 받았다.
지난해 6월 1100억 원 규모 공모채 수요예측에서 기관 주문이 전무했던 것과 비교하면 시장의 평가가 크게 달라진 셈이다. 롯데건설은 최대 1천억 원까지 증액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조달 자금은 채무 상환에 사용할 예정이다.
회사채 시장에서 롯데건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배경에는 실적과 재무구조 개선이 있다. 롯데건설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72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09억 원보다 4배 이상 늘었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186.7%에서 올해 2분기 말 162.8%로 낮아졌다.
호텔롯데는 롯데렌탈 매각을 통해 8천억 원대 현금 유입을 앞두고 있다.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은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TPG(텍사스퍼시픽그룹)가 설립한 특수목적회사에 롯데렌탈 지분 61.17%를 1조3105억 원에 넘기기로 했으며, 이 가운데 호텔롯데 몫은 8170억 원이다.
이번 거래는 지난 5월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의 계약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불허로 무산된 지 석 달 만에 성사됐다. 주당 매각가격은 기존 계약보다 낮아졌지만, 잔여 지분 5%까지 전량 처분하면서 현금 유입 규모를 최대한 확보했다.
이번 매각은 롯데그룹이 보유 자산을 현금으로 전환해 재무 부담을 낮추는 선택지를 실제로 실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기에 호텔롯데의 본업인 호텔사업에서도 벌어들이는 힘이 커지고 있다. 호텔사업부 영업이익은 2022년 65억 원에서 지난해 1177억 원으로 늘었고, 올해 상반기에도 576억 원을 기록했다.
다만 최근 나타난 변화만으로 롯데그룹의 재무 정상화가 본격화됐다고 보기는 이르다. 자산 매각과 미수금 회수는 당장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수단은 아니다. 결국 신 회장에게 남은 과제는 확보한 자본을 성장 투자와 재무 개선에 적절히 배분하고, 본업에서 창출한 현금이 다시 차입금 감축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롯데그룹은 그동안 계열사 지원과 신사업·해외사업 등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해온 만큼, 앞으로는 성장 투자를 이어가면서도 확보한 자본이 다시 재무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한국신용평가도 롯데렌탈 매각에 따른 호텔롯데의 재무 부담 완화 효과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지속적 투자와 계열사 지원 부담 등을 고려하면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