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이 사건 발생 2년 만에 자국 병사가 5세 소녀 힌드 라잡과 가족을 향한 총격을 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형사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민간인을 구하려던 구급대원부터 의료진과 구호활동가들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숨지는 일이 반복되는 가운데, 민간인들을 살해한 병사들이 실제 처벌을 받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팔레스타인 소녀 힌드 라잡의 생전 모습. 소녀는 2024년 2월 가자에서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숨졌다. 이 사진은 가족이 제공해 2024년 8월 19일 공개됐다(왼쪽). 이스라엘군은 2026년 8월19일 5세 소녀 힌드 라잡과 가족의 사망 사건, 그리고 팔레스타인 구급대원 15명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군인들의 행위에 대한 형사 수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국화 자료사진. AP/연합뉴스/픽사베이
이스라엘방위군(IDF)은 19일(현지시각) 2024년 가자에서 5세 소녀 힌드 라잡과 가족 6명이 타고 있던 차량에 자국 병력이 총격을 가한 사실을 인정하고 이 사건에 대한 형사 수사를 명령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이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그동안 사건 현장에 자국 병력이 없었다고 거듭 부인해왔지만, 이번에 자국 병력의 총격 사실을 인정하며 기존 주장을 번복했다.
‘병력 없었다’던 이스라엘군, 5세 힌드 라잡 총격 인정
힌드는 2024년 1월29일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군의 공세를 피해 이동하던 중 차량에 총격을 받아 홀로 살아남았다. 차량 안에 갇힌 힌드는 팔레스타인 인도주의 구호단체 적신월사에 약 3시간 동안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다. 적신월사는 힌드를 구하기 위해 구급차를 현장으로 보냈지만, 구조에 나선 구급차마저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받아 구조대원 2명이 숨졌다. 힌드와 가족들의 시신은 이스라엘군이 현장에서 철수한 뒤 12일이 지나서야 수습됐다.
힌드의 구조 요청을 담은 통화와 사건의 전말은 국제적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이 사건은 이후 영화 ‘힌드의 목소리’로 제작되면서 다시 한번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이스라엘군은 사건 직후부터 해당 지역에 자국 병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언론과 여러 기관의 조사에서 사건 현장 인근에 이스라엘군 전차가 있었고, 이들이 차량에 총격을 가했음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잇따라 나왔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조사 결과를 검토하고,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구급차의 이동 조율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제를 고려해 군사경찰 범죄수사부가 해당 사건에 대한 형사 수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수사가 실제 책임 규명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인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이스라엘 군인을 대상으로 한 형사 수사는 실제 기소로 이어지는 사례가 거의 없으며, 기소된 사건조차 유죄 판결까지 이르는 경우는 더욱 제한적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이스라엘군의 ‘인정’이 곧 책임자 처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민간인을 살리기 위해 현장으로 들어가는 의료진과 구조대원들까지 공격을 받았다는 점이다. 가자에서 의료·구호 인력에 대한 공격은 개별적인 오인이나 우발적인 사고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2025년 3월 가자 남부 라파 인근에서는 팔레스타인 의료진과 인도주의 활동가 15명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숨졌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무장대원들을 매복 공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가 부상자들을 이송하려던 구급차에 총격을 가했고, 이후 현장으로 접근한 다른 긴급구조 차량에도 총격을 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장 휴대전화 영상과 유일한 생존자의 증언 등이 이를 뒷받침했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이후 시신과 차량을 불도저로 밀어 한곳에 묻었다.
이스라엘군은 처음에는 차량들이 전조등이나 긴급 신호를 켜지 않은 채 “수상하게 접근했기” 때문에 발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적신월사와 민방위대 차량이 긴급등을 켜고 이동했고 구조대 로고도 선명하게 표시돼 있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자 기존 설명을 번복했다. 이스라엘군은 이 사건에 대해서도 형사 수사를 개시하기로 했다.
구급차와 구조대원은 교전하는 무장세력이 아니라, 전쟁으로 다친 사람을 살리기 위해 현장으로 들어가는 이들이다. 의료진과 구조대원이 공격받으면 부상자를 치료하고 고립된 민간인을 구조할 최소한의 통로 자체가 끊긴다. 전쟁으로 이미 무너진 의료체계에 대한 공격이 결국 더 많은 민간인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스라엘군, 사건 따라 수사 여부 달랐다
그러나 같은 의료·구호 인력의 사망 사건인데도 이스라엘군의 대응은 달랐다. 어떤 사건에는 형사 수사를 개시하면서도, 다른 사건에는 수사조차 하지 않기로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4년 4월 월드 센트럴 키친(WCK) 차량 공습 사건이다. 당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구호활동가 7명이 숨졌지만, 이스라엘군은 형사 수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월드 센트럴 키친은 차량들의 이동을 이스라엘군과 사전에 조율했다고 밝혔고, 차량 지붕에는 공중에서도 식별할 수 있는 단체 로고가 표시돼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차량에 타고 있던 일부 인원을 하마스 무장 요원으로 잘못 판단했고, 구호 차량 행렬이 사전에 조율된 경로에서 벗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휘관들의 결정이 범죄 행위를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제공하지는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월드 센트럴 키친은 이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단체는 “치명적인 공격이 발생했을 당시 이스라엘군은 가자에 있던 우리 팀이 비무장 상태였고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IDF가 차량의 이동 경로와 구호팀의 신원 및 활동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이스라엘군은 2023년 11월과 2024년 2월 각각 발생한 사건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인도주의 활동가 4명이 숨진 사건에 대해서도 형사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
수사한다고 끝이 아니다, 기소·처벌은 극히 드물다
이스라엘의 수사 결정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제 군 수사관들이 사건을 들여다보고 조사 결과를 군 검찰에 넘기게 된다. 이후 군 법률자문관이 수사를 계속할지, 사건에 연루된 군인들을 기소할지, 아니면 사건을 종결할지를 결정한다.
하지만 수사가 시작됐다고 해서 책임자 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하모케드(HaMoked)의 탈 슈타이너 대표는 AP통신에 실제 조치가 이뤄지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아예 아무런 조치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소 자체가 드물고, 유죄 판결은 더더욱 드물기 때문이다. 슈타이너 대표에 따르면 2023년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인 수감자에 대한 학대 혐의로 실제 수감된 이스라엘 군인은 단 한 명뿐이다. 해당 군인도 2025년 6월 유죄 인정 합의에 따라 7개월간 수감되는 데 그쳤다.
실제 통계도 이 같은 지적을 뒷받침한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예시딘(Yesh Din)의 분석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세 차례 가자지구 군사작전에서 이뤄진 전체 군 수사 가운데 기소로 이어진 사건은 고작 0.17%에 불과했다.
유엔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해왔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2026년 2월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의 점령하 팔레스타인 지역 내 행위와 관련해 “광범위한 면책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를 “중대한 인권법 위반과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에 대한 책임 규명 부족과 연결하며, 일부 위반은 “전쟁범죄와 기타 국제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에서 민간인을 고의로 표적으로 삼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마스가 민간인을 무장대원들의 방패로 이용하고 있어 전투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 이스라엘 측 주장이다.
그러나 힌드 라잡 사건에서는 이스라엘군의 개입 사실이 처음에는 부인됐다가 뒤늦게 인정됐고, 힌드를 구하려던 구급대원 2명도 현장에서 숨졌다. 라파에서는 구급차와 구조대원들이, WCK 사건에서는 구호활동가들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의료·구호 인력을 겨냥한 공격이 반복되면서 이를 개별적인 ‘오인 사격’이나 ‘전투 중 사고’로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사건에서 누가 어떤 판단에 따라 총격과 공격을 가했는지, 민간인을 구조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간 의료·구호 인력들이 왜 반복적으로 피해를 입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남는다. 수사 착수 여부를 넘어 수사 결과가 실제 책임 소재 규명과 책임자 처벌로 이어지는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