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강국' 프랑스가 올여름 냉각수 문제로 뒷덜미가 잡혔다. 강에서는 가뭄과 폭염으로 물이 말라 냉각수를 대지 못했고, 바다에서는 해파리 떼가 냉각수 취수구를 막아버렸다.
두 가지 문제가 겹치면서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 용량의 20%가 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가동 차질을 겪고 있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후 해법'으로 꼽혀온 원전이 정작 기후변화 앞에서 약점을 노출한 셈이다.
프랑스의 그라블린 원자력 발전소. ⓒ 로이터=연합뉴스
20일 유로뉴스를 비롯한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프랑스는 가뭄과 극심한 더위, 해파리 창궐 등 환경요인으로 원자력 발전용량의 20%가 넘는 역대 최대의 가동차질을 기록한 것으로 파악된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 EDF가 공개한 데이터를 AFP통신이 분석한 결과 전체 발전 용량의 20.4%가 사용 불가 상태로 나타났다. 이는 '환경적 제약'에 따른 발전 중단 가운데 역대 최대치다. EDF의 원자로 57기 가운데 13기가 영향을 받았고, 8기는 완전히 멈췄으며, 5기는 출력을 줄여 돌렸다.
마른 강물 : 냉각수를 못 대는 원전들
프랑스의 원전 상당수는 강물로 원자로를 식힌다. 문제는 올여름 반복된 폭염과 가뭄으로 강물이 줄고 수온이 오르면서 냉각수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하천 수위가 낮아지고 수온이 오르면 생태계 보호를 위해 발전량을 줄이거나 정지해야 한다. 원전의 열을 식히면서 데워진 냉각수를 다시 하천으로 흘려보내면 강물을 더 뜨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올여름 폭염을 겪으면서 가론강·론강·센강 유역의 골페슈, 뷔제, 노장 등 여러 원전이 연쇄적으로 출력을 줄이거나 멈췄다.
골페슈 원전은 가론강 방류수 온도가 냉각 후 28도를 넘지 않도록, 노장 원전은 센강 하류 수온이 방류 전보다 3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규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강물 리스크'는 프랑스만의 일이 아니다. 헝가리의 유일한 원전인 팍시는 7월 말 다뉴브강 수위가 역대 최저치로 떨어지며 원자로가 순차적으로 멈췄고, 8월2일에는 가동 중이던 마지막 유닛까지 정지돼 44년 만에 처음으로 원전 전체가 정지됐다. 팍시 원전은 헝가리 전력의 거의 절반을 책임진다.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도 다뉴브강의 '전례 없이 낮은' 수위로 원자로 1호기가 7월28일 먼저 멈췄고, 2호기마저 8월13일 정지되며 두 원자로가 사상 처음 동시에 가동을 중단했다. 루마니아 당국은 냉각수를 우회시키려 강에서 통제된 폭발작업까지 벌였다.
르몽드는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등 유럽연합 6개국이 낮은 강물수위나 수온상승으로 발전소 가동을 멈췄다고 전했다.
들끓는 바닷물 ; 해파리에 막힌 원전 취수구
바닷속 원전 복병 헤파리 떼. ⓒ 픽사베이
바다를 냉각수원으로 쓰는 원전은 해파리라는 또다른 변수와 씨름해야 했다.
프랑스에서 이번 여름 손실된 발전 용량의 대부분은 프랑스 그라블린 원전에서 나왔는데, 해파리 떼가 취수펌프의 필터를 막으면서 원자로 6기 가운데 5기가 전체 또는 부분 가동 중단됐다.
벨기에 핵연구센터는 "8월11일은 그라블린 원전에 2년 연속 반갑지 않은 날이 됐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날에도 이 프랑스 원전에 해파리 떼가 취수구를 막아 원자로 3기가 정지됐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 EDF가 원전에 해파리 방지 설비에 수십만 유로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도 '수십 톤' 규모의 해파리가 취수 스크린을 다시 막는 것은 방지하지 못했다.
해파리로 인한 원전 정지는 프랑스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2011년 스코틀랜드 토네스 원전과 스웨덴 오스카르샴 원전이 해파리로 가동을 중단했고, 중국에서는 훙옌허(紅沿河) 원전이 2014~2023년 반복적으로 가동을 멈췄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재단 세계경제포럼(WEF)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난화가 해파리 급증의 배경이며, 해파리는 산소가 부족한 물에서도 잘 버텨 데워진 바다일수록 오히려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결국 강물이든 바닷물이든 냉각수를 끌어오는 원전의 취수시설은 기후변화가 만든 물리적·생물학적 변수 앞에서 반복적으로 무력화되고 있다.
원전을 '기후에 강한 무탄소 전원'으로 규정해온 각 나라들이 에너지 전략을 어떻게 바꿔 이런 취약성을 보완할지가 앞으로 원자력 정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