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은 스크린에 올릴 수 있는데,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올릴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2007년, 법과대학 강의실에서 한 교수가 툭 던진 말이 20년 가까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연구관을 지낸 교수는 한국의 영상물심의 규정이 폭력과 성애를 다른 잣대로 규율하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살인은 표현할 수 있지만, 사랑과 깊은 관련이 있는 섹스는 표현할 수 없다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일까. AI 이미지
당시에는 다소 과격한 문제제기로 들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세월이 지난 만큼 더 또렷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는 폭력과 살인, 신체 훼손은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으로도 충분히 스크린에 오른다. 하지만 성애를 진지하게 다룬 영화는 곧바로 ‘제한상영가’라는 사실상의 상영금지 등급을 받는다.
제한상영가는 작품을 올릴 상영관 자체가 현실적으로 없기 때문에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는 등급판정이 아니라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2013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가 그랬다.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직계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 반사회적 표현이 있다”며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겼다.
2012년에는 노르웨이 영화 ‘너무 밝히는 소녀 알마’ 역시 여자 주인공의 성적 표현을 문제 삼아 같은 등급을 받았다. 이에 영화계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며 반발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님포매니악’도 국내에서는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영화 ‘천국의 전쟁’ 역시 노골적 성관계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를 받았고, 이 작품은 송사 끝에 대법원까지 갔지만 결국 제한상영가 등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성애 영화에 대한 규제가 이상한 이유는 '합리적 기준'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폭력 묘사에는 이런 포괄적 금지 제재가 없다. 총기난사와 고문까지도 서사적 맥락만 있으면 15세 관람가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게 된다.
그런데 성인 간의 합의된 성적 관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 그 이유만으로도 상영자체가 막힌다. 폭력은 죄악시하지 않으면서 사랑과 섹슈얼리티는 죄악시하는 이런 기이한 규제는 한국 사회가 성을 너무 엄격하게 바라보는 것 아니냐는 의문에 빠지게 한다.
법적 측면에서도 이런 제재는 근거가 부족하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영화진흥법상 등급분류보류제도를 두고 “한국 헌법이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사전검열에 해당한다”며 위헌결정을 내렸다. 2008년에는 비디오물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반복했다.
헌법재판소는 같은 해 제한상영가 등급 기준을 두고도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제한상영가라는 틀 자체는 그대로 둔 채 조문만 손질했고, 그 결과 위헌논란이 봉합된 것처럼 보일 뿐 실질적 검열기능은 2026년 현재도 작동하고 있다.
한국의 성애영화에 검열은 세계적 추세를 바라보더라도 많이 후진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국 영상물등급위원회(BBFC) 지침은 “성인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리고 유해하지 않은 한 가능한 최대한으로 무엇을 볼지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 원칙에 따라 성인 전용 R18 등급에서는 2000년 개정 이후 실제 성행위를 묘사한 콘텐츠까지도 허용된다.
영국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최근에도 성적 묘사 자체를 금기시하기보다 폭력적이고 강압적 성행위 묘사에 규제의 초점을 맞춰 기준을 조정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성적 표현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규제의 기준으로 잡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이 실제로 유해한가’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한국의 접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엔 차원의 표현의 자유규범도 영국과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은 예술적 형식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정보와 사상을 구하고 받고 전달할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성적 표현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전에 유통자체를 막는 한국의 규범과 전혀 다른 방향성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핵심은 한국 영상물등급위원회나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이 일반 시민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잣대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특별한 자격을 가진 검열관이 아니라 국가가 위촉한 한낱 개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성인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권리를 위촉된 십여 명의 위원들이 대신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기관이 문화적 금기를 다룬 예술작품의 공개 여부를 어찌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폭력과 살인은 서사가 되고 사랑과 성애는 범죄가 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은 20년 전 헌법학 교수의 물음을 곱씹게 한다. 성인의 알권리와 자기결정권은 소수의 심의위원이 대신 판단해 줄 성질의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