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물건만 기억하지 않는다. 그 물건을 둘러싼 이야기와 취향, 그때 느꼈던 감정까지 함께 기억한다.
문화예술이 가진 힘도 여기에 있다. 전시 한 편을 보고, 음악 한 곡을 듣고, 공연 한 장면을 마주하는 경험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개인의 감정과 기억으로 남는다. 경험 소비가 확산하면서 기업들이 문화예술에 주목하는 이유다. 상품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감정과 이야기를 브랜드에 더하고, 소비자가 브랜드를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어서다.
이러한 변화는 경영학에서 말하는 ‘경험 경제’와도 맞닿아 있다. 경영학자 조지프 파인과 제임스 길모어는 상품과 서비스가 점차 비슷해질수록 기업의 차별화 수단으로 ‘경험’을 제시했다. 상품을 단순히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객에게 기억에 남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그 경험의 재료로 문화예술을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 2025’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경험이 소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업들도 전시와 공연을 고객 경험 전략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CJ그룹은 문화예술을 멤버십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CJ올리브네트웍스가 운영하는 CJ ONE은 문화예술 전시 플랫폼 그라운드시소와 제휴해 포인트 적립·사용처를 확대한다고 20일 밝혔다. CJ ONE 회원은 그라운드시소 앱에서 전시 티켓을 예매하거나 아트샵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포인트를 적립하고 사용할 수 있다. VIP 회원에게는 등급별 전시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
포인트를 쌓고 쓰는 익숙한 소비 행위에 전시 관람이라는 문화적 경험을 연결한 것이다. 문화예술을 별도의 이벤트로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멤버십의 소비 동선 안에 넣어 고객의 일상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신세계그룹은 세계적 아트페어를 통해 문화예술과 브랜드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다음 달 열리는 ‘프리즈 서울 2026’의 공식 헤드라인 파트너로 참여하고 5년 동안 파트너십을 이어간다. 행사 관람객을 위한 신세계 전용 라운지도 운영할 예정이다.
단순히 아트페어를 후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외 갤러리와 작가, 컬렉터, 문화예술 기관이 교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쇼핑이라는 기존 고객 경험에 세계적 문화예술 콘텐츠를 더해 신세계라는 브랜드가 가진 라이프스타일의 영역을 넓히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아예 백화점 안에 전문적 전시 공간을 만들며 문화예술을 공간 경쟁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한국메세나협회의 ‘2025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에서 개별 기업 가운데 문화예술 지원 규모가 가장 큰 기업으로 선정됐다.
대표적 공간이 더현대 서울의 복합문화공간 ‘알트원’이다. 2021년 문을 연 알트원은 지난 6월 기준 누적 유료 관람객 160만 명을 넘어섰다. 백화점에서 쇼핑하다 전시를 보는 수준을 넘어 전시를 보기 위해 백화점을 찾는 고객이 생긴 것이다. 상품을 구매하기 위한 공간이었던 백화점에 문화예술이라는 새로운 방문 목적을 더한 셈이다.
세 기업의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CJ그룹은 멤버십에 문화예술을 넣고, 신세계그룹은 일상 공간에 문화예술을 심으며, 현대백화점그룹은 쇼핑 공간 자체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