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배우들은 화려한 조명과 명성을 얻지만, 그 이면에는 혹독한 노동과 약물, 성적 착취와 폭력 등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미국 배우 헤이든 파네티어의 사망을 계기로, 아역 배우들을 둘러싼 할리우드의 착취 구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할리우드의 아역배우 착취. AI로 생성한 이미지.
18일(현지시각) ABC뉴스는 배우 헤이든 파네티어가 지난 16일 3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의 한 주택에서 911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는 심정지 상태의 파네티어를 발견했다. 응급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응급처치를 시도했지만, 그는 결국 같은 날 오후 2시32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1989년생인 파네티어는 불과 4세였던 1994년 ABC 드라마 ‘원 라이프 투 리브’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아역 배우로 이름을 알린 그는 2006년 방영된 NBC 드라마 ‘히어로즈’에서 자가 치유 능력을 가진 치어리더 ‘클레어 베넷’을 연기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가족과 팬들이 그를 애도하는 가운데 외신들은 화려했던 배우로서의 삶보다 그 이면에 놓였던 고통에 주목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파네티어가 올해 초 출간한 회고록 ‘디스 이즈 미(This Is Me)’를 통해 털어놓은 삶의 궤적을 조명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파네티어는 어린 시절 자신의 연예 활동을 지나치게 통제했던 어머니의 압박으로 질병이나 부상을 무릅쓰고 일을 이어가야 했다고 고백했다.
파네티어는 회고록에서 명성의 압박을 견디기 위해 약물 복용을 권유받았고, 결국 중독 치료까지 받아야 했던 경험도 털어놓았다. 여기에 할리우드 관계자들에게 당한 성희롱과 파트너로부터의 가정폭력, 출산 이후 겪은 산후 우울증까지 감당해야 했다고 한다.
할리우드에서 아동 배우를 둘러싼 착취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린 배우를 '스타로 훈련한다'는 명목으로 살인적인 촬영 일정을 소화하게 하고, 체중과 외모를 통제하는 것은 물론 약물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는 증언이 과거부터 이어져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인물이 1939년 MGM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연을 맡은 미국 배우 주디 갈랜드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의한 조직적 착취의 상징적인 피해자로 꼽히는 갈랜드는 아역 배우 시절 각성제를 아침에 투여받고 72시간에 이르는 연속 촬영을 견뎠다. 이후 저녁에는 다시 수면제를 투여받고 강제로 잠에 들었다고 한다.
‘오즈의 마법사’ 촬영이 끝날 당시 17세였던 갈랜드는 이미 약물 중독 상태였으며, 이는 평생 이어져 결국 47세에 사망하는 직접적 원인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갈랜드가 19세의 나이에 임신했을 때는 루이스 B. 메이어 MGM 사장이 촬영 일정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강제 낙태를 명령했다. 이 밖에도 다수의 성폭행, 성추행 등이 그의 자서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2023년 3월 한 시상식 무대에 선 배우 헤이든 파네티어의 생전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더욱 씁쓸한 사실은 이런 착취가 과거의 유물로만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착취의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영화사와 방송사가 어린 배우의 노동력을 통제했다면, 오늘날에는 부모와 기획사, 플랫폼이 얽힌 새로운 구조 속에서 아동의 일상과 이미지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키드플루언서'(키드+인플루언서)다.
유튜브와 틱톡 등 SNS에서 활동하는 어린이는 수많은 팔로워와 조회수를 거느리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과 수익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2026년 6월 기준 미국 50개 주 가운데 어린이 인플루언서의 수익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일리노이, 캘리포니아, 미네소타, 유타 등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 주에서는 어린이가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내세워 수익을 올리더라도, 그 수익을 어떻게 보호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법적 장치가 부족하다.
이는 어린이가 아무리 많은 수익을 올리더라도 스스로 계약을 체결하거나 자신의 수익을 독립적으로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가 보호자인 동시에 콘텐츠 제작자이자 수익 관리자의 역할까지 맡는 경우, 아이가 제공한 노동의 대가와 그 수익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보호해야 하는지조차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유타주의 가족 브이로그 채널 '8 Passengers'를 운영했던 유튜버 루비 프랑케의 사례는 이러한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프랑케는 월 10만 달러(약 1억 3천만 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자녀들의 일상을 지속적으로 콘텐츠에 노출했다.
그러나 2023년 자녀 중 한 명이 굶주리고 상해를 입은 상태로 이웃집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아동 학대 혐의가 세상에 알려졌다. 프랑케는 2024년 중증 아동 학대 혐의로 기소됐으며, 최대 30년형에 해당하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유타주가 2025년 어린이 인플루언서의 수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인 ‘HB 322’를 제정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부모가 자녀를 콘텐츠에 출연시켜 수익을 올리더라도, 그 수익을 자녀의 몫으로 별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에 생성형 AI라는 새로운 위협까지 등장했다.
영화 '마틸다'에 출연한 아역 배우 출신 마라 윌슨은 지난 1월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이 AI로 합성된 성착취물에 이용됐다고 폭로했다. 그는 생성형 AI의 발전으로 인터넷에 얼굴이 공개된 아이들이 성적으로 착취될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고 경고하며,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이제 어린이 배우를 둘러싼 위험은 촬영장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가 출연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가는 순간, 그 이미지가 어디까지 복제되고 변형될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한 번 온라인에 퍼진 얼굴은 삭제한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