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유명 배우의 스크린 복귀 소식이 언론을 장식했다. 마약 상습 투약 사실이 알려지며 대중의 곁을 떠났던 배우 유아인이 그 주인공이다.
마약을 상습 투약한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이 2023년 12월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건 발생 3년 5개월 만에 장재현 감독의 신작 '뱀피르'로 돌아온다는 기사에, 대중의 반응은 엇갈린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2020년부터 약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면 마취를 빙자해 181차례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 등을 투약한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너무 쉽게 복귀하는 것 아니냐"며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고, 다른 누군가는 "법적 죗값을 치렀으니 본업으로 돌아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말한다.
마약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로서, 나는 이 뉴스를 접하며 대중의 분노나 환호가 아닌 숫자에 먼저 시선이 멈췄다. '181차례.'
이 숫자는 중독의 늪이란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가장 잔인한 지표다. 많은 이들이 연예인의 마약 사건을 화려한 파티나 쾌락의 연장선으로 소비하지만, 실상은 그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화려한 조명과 수많은 대중의 시선이라는 중압감 속에, 잠들지 못하는 고통과 불안을 수면마취제로 억눌러야만 했던 한 인간의 병리적 의존 상태. 181번의 바늘자국은 범죄의 흔적인 동시에, 그가 실제로 치료를 요하는 '환자'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상흔이다.
필자의 졸저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에서도 짚었듯, 유명인의 마약 사건은 이중의 형벌을 동반한다. 법정에서 내려지는 사법적 형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대중의 입길에 오르내리며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사회적 형벌'이다. 온 국민이 나의 몰락을 지켜보고 조롱하는 상황에서, 중독이라는 질병과 싸워 이겨내기란 평범한 투약자들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럽고 외로운 과정일 수밖에 없다.
마약 사범에게 진정한 의미의 '형벌의 끝'은 어디일까. 형기를 마쳤다고, 혹은 집행유예 기간이 끝났다고 중독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형사 사법 시스템과 치료·재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투약자를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중독을 이겨내고 다시 온전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것에 있다.
배우에게 사회는 곧 촬영장이며, 대중 앞이다. 3년5개월이라는 공백기는 단순히 대중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수동적으로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좁은 구치소 방 안에서,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는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약물 의존에서 벗어나 현실의 무게를 견뎌내는 법을 다시 배우는, 치료와 치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마약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한다. 하지만 그 단호함이 한 번 넘어진 자를 향한 '사회적 사형 선고'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죗값을 치르고 병마와 싸워,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오려는 노력마저 팔매질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 사회는 많은 중독 환자들에게 영원히 뒷골목에 숨어 지내라는 절망만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유아인의 복귀작 '뱀피르'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공교롭게도 '점차 변화하는 청부업자'라고 한다. 약물의 장막을 걷어내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선 그가,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변화하고 스스로를 증명해 낼지 지켜볼 일이다. 그것이 마약이라는 지독한 질병을 앓았던 한 환자의 복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좀 더 성숙하고 건강한 시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