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상원이 사라 두테르테 필리핀 부통령의 탄핵심판 절차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탄핵재판은 당장의 필리핀 내 여야 역관계뿐 아니라 2028년 필리핀 대선 구도와 대외정책 방향을 가를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친미·반중 노선을 지향하는 반면, 탄핵소추된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은 친중 성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번 탄핵정국은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 경쟁에도 큰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사라 두테르테 필리핀 부통령. ⓒ AFP통신=연합뉴스
19일 로이터와 필리핀 매체 래플러를 종합하면 필리핀 상원 탄핵재판소는 지난 7일부터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의 탄핵사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필리핀 헌법상 탄핵은 하원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상원 의원 전원이 재판관으로서 유무죄를 가리는 2단계 구조를 띄고 있다. 필리핀 대법원은 탄핵과 관련해 절차적 흠결만 심의한다.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은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구금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딸이다.
필리핀 남부지역에서 막강한 인기를 누리는 두테르테 가문에 속한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은 2028년 필리핀 유력 대선주자로 꼽힌다.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은 공금유용, 부정축재, 마르코스 대통령 부부와 하원의장에 대한 암살위협 발언을 한 혐의로 탄핵소추됐다.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정적인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의 탄핵을 추진했지만 필리핀 대법원이 탄핵시도에 절차적 흠결이 있다며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번 탄핵심판은 약 4~6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필리핀 상원의원 재적 24명 가운데 3분의2인 16명 이상이 유죄를 인정해야 해임과 공직자격 박탈이 확정된다.
마르코스와 두테르테 : 동맹에서 대립으로, 균열의 뿌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2026년 3월4일 마닐라 콘래드 호텔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마르코스 대통령과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의 갈등은 미국과 중국 관계를 두고 정치적 노선에서 차이를 보이면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2022년 대선에서 러닝메이트로 손잡으며 정치적 동맹을 형성했지만, 마르코스 정부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두고 중국과 정면충돌하면서 친미국 노선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멀어졌다.
여기에 마르코스 대통령의 개헌 추진을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 측이 '장기집권 시도'로 규정하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민다나오 섬 분리독립론까지 꺼내면서 갈등은 더욱 커졌다.
2024년 6월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이 교육부 장관과 반군 대응 태스크포스 부의장에서 사퇴하면서 마르코스 대통령과 동맹은 공식적으로 파국을 맞았다.
필리핀에서 발생한 이번 탄핵정국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마르코스 대통령과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의 대외정책 노선이 정확히 미중 경쟁의 축과 겹치기 때문이다.
마르코스 정부는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일본, 호주 등과 연합훈련을 늘리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전선에 적극 참여해왔다. 필리핀은 2025년 미국과 최소 8차례의 양자 및 다자 해상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9월에는 중국이 남중국해에 위치한 스카버러 암초 북부를 일방적으로 '자연보호구역'으로 선포하고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발사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양국 관계의 긴장이 고조됐다.
미국은 이런 중국의 행동을 두고 국무부 명의로 강력히 규탄하면서 미국, 필리핀, 일본, 캐나다, 프랑스 5개국 합동해상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구도에서 친중성향의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이 2028년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필리핀의 대외정책이 중국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마르코스 대통령 측이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을 탄핵하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결국 이번 탄핵재판의 결과는 단순히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넘어 필리핀이 앞으로도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안보전략에 편승할지, 아니면 중국과 관계개선을 모색할지를 가르는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