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가 이재명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 발언 등을 두고 정개개편 추진이라 판단하면서 "실패할 길"이라는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정치권에 파장이 일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토·농식품·해수부 등에 대한 부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 작가는 많은 지지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기존 뼈대 위에 살을 붙이는 '증축'을 기대했지만 이 대통령은 집을 완전히 허물고 새 틀을 만드는 '재건축'을 구상하는 것 같다며 지금 같은 정계개편 기획은 민주진영 전체가 폭파되는 참혹한 결과로 귀착될 것이라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했던 "구조적 다수"의 사례는,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식 모델과 1990년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노태우, 김종필과 연합한 민주자유당(민자당) 모델이 꼽힌다. 일본 자민당은 장기 집권의 토대가 됐지만 그에 따라 일본 정치의 후진화의 핵심요인으로 거론된다. 반면 노태우 대통령이 주도한 민자당은 김영삼 정권 재창출에는 성공했으나 김대중 정부의 평화적 정권교체로 귀착했다.
16일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유시민 작가의 정계개편에 대한 발언을 두고 날선 반응 쏟아졌다. 유 작가를 비난하는 쪽의 반응은 크게 두 갈래 나뉜다. 한 쪽은 이 대통령이 정계개편을 구상하고 있지 않다면서 유 작가의 주장 자체가 틀렸다고 반박했다. 다른 쪽은 이 대통령의 중도보수 포용 기조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방어적 논리'를 펼쳤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뉴스쇼에서 "대통령이 되는 순간 원칙을 지키면서 통합적 관점으로 국정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며 "지방선거에서도 어쨌거나 완벽한 완승이라고 하기는 뭐 하지만 일정 정도 신뢰를 받았는데 지금 정계개편을 할 이유가 있나? 유 작가가 상황판단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방어적 논리를 펼쳤다. 박 의원은 같은 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우리끼리만 가지고는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대통령들이 집권 후에는 중도 보수를 포용한다"며 "보수가 집권하면 좌클릭을 하면서 우리를 포용해 줘야 되고 진보가 집권하면 우클릭을 해서 포용해서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 좋으니 유 작가가 뜻이 있더라도 지금은 (이재명 정부를) 도와달라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반박과 별개로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이 "구조적 다수"를 위해 단순한 지지층 확장이 아니라 중도·보수 세력을 끌어안아 판을 새로 짜려는 '대규모 정계개편'을 진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 작가는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뿌리와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병태 전 규제합리위위원회 부위원장 등 극우 인사의 기용,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에게 상징과도 같은 검찰개혁의 '타협' 등은 정계개편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해석이나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유 작가는 전날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서 "대통령이 정당의 재건축이나 재개발, 즉 정계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때라야 의미 있는 행위들이 쭉 나왔다"며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재건축, 재개발 구상이 있고 뒷받침하는 팀이 있다고 본다. 그런게 없이 그런 말(구조적 다수)이 나오진 않는데 그 팀의 기획수준이 되게 형편없다"고 강조했다.
유 작가의 지적처럼 이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 언급에 주목할 때, 이 대통령은 일본의 ‘1955년 자민당 체제’를 원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자민당은 1955년 보수 세력을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한 이후 당내 계파 경쟁을 제도화하면서 다양한 정치세력을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흡수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2025년 3월 채널A 정치시그널에서 보수논객 정규재씨와 대담을 나누면서 "(촛불혁명 이후) 민주당, 또 민주 세력이 실제로는 진보 세력이라고 하기가 좀 어렵기 때문에, 그때 좀 그 구조적 다수로 전환을 했어야 된다"며 "소위 탄핵 세력의 연합이 필요했다. 그래서 안정적인 이 사회의 주류로 만들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계개편 방향으로 일본 자민당식 '포괄정당(Catch-all Party)' 전략을 목표로 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극우화 된 국민의힘을 소수세력으로 만들고 민주당이 중도보수 세력으로서 안정적 다수와 주류를 차지한자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선명한 이념' 대신 민생과 경제 성장을 앞세워 중도·보수 유권자층을 영구적으로 흡수하겠다는 계산일 수 있다.
다만 일본과 우리는 정치 현실이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정당 정치의 역동성이 훨씬 강하고 정권을 가차 없이 심판해 온 경험을 쌓여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래 제대로 된 정당 정치 역사가 사실상 없으며 유권자의'선거혁명' 경험도 없다. 그리고 보수의 정신적 상징인 천왕이 버티고 있다. 중도보수층 수용 또는 중도보수정당화 전략은 자칫 '정체성 상실'로 이어져 민주당이 공중분해 될 수도 있다.
유시민 작가가 15일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서 말하고 있다. ⓒ유튜브 매불쇼 갈무리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 구상'의 미래를 두고 1990년 노태우·김영삼(YS)·김종필의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민자당)을 반면교사로 들었다.
당시 여소야대 정국에 갇혀있던 노태우 정권과 대권을 잡겠다는 YS의 현실적 필요가 맞물려 집권여당이던 민주정의당(민정당)과 YS의 통일민주당(통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손을 잡고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창당했다.
민자당은 여소야대 정국을 단숨에 돌파하며 국회 의석의 70%가 넘는 218석의 초대형 공룡 여당으로 출발했고, YS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화 세력의 거센 비판에도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는 명분을 내세워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결국 집권 세력은 3당 합당을 통해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념적 동질성 없이 집권을 위한 세력 간 인위적 결합은 결국 끊임없는 갈등을 낳았고 민자당은 합당 후 치러진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149석에 그쳐 과반 의석 확보조차 실패했다. 그리고 민자당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정권을 내줬다.
요컨대 민자당은 3당 합당으로 한 차례 정권 재창출에는 성공했으나 결국 총선과 대선에 잇달아 패배하면서 한국 정치는 그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3당 합당은 당장은 큰 이득이 될 듯 보이지만 결국 민의를 벗어난 인위적 정계개편은 '한 시절의 꿈'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명분도 문제다. 차라리 YS는 부실했지만 나름 명분이라도 있었다. 처음으로 문민정부를 탄생시키겠다고 했고 유권자들은 이에 호응했다. 현재 민주당이 갖고 있는 정치적 위상과 의석수,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에서 정개개편을 위한 명분을 찾기 힘들다고 유 작가는 지적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을 확실하게 뒷받침했던 당이고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원내 제1당이자 여당"이라며 "재개발이든 증축이든 시대가 요구하고 대중이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을 때라야 성공할 수 있는데 지금은 대중의 요구나 인정이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은 당분간 이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 발언을 두고 외연확장인지 정개개편 추진인지 설전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 쪽 인사들은 일단 정개개편 추진을 부인한다. 이재명 정부 첫 정무수석을 역임한 우상원 강원도지사는 이날 CBS라디오 뉴스쇼에서 "(대통령이)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 보수 인사들을 좀 끌어들이는 것은 재건축이 아니라 외연 확장이라고 보고있다"며 "완전히 주력 부대를 바꾸려고 하는 재건축으로 이해하시는지 제가 볼 때는 조금 잘못 판단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들이 많이 활동하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난 1년여 동안 보여준 중도보수로의 외연확장 행보를 두고 단순히 선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만으로 보이지 않는 반응이 쌓여 왔다.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 뉴스NOW에서 "필연적 실패라는 도를 넘는 얘기를 했지만 유 작가가 왜 저런 발언을 했을까에 대해 근본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며 "그 경고의 메시지가 단순하게 유시민 작가의 개인적 생각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유 작가 생각에 동의하는) 핵심 지지층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