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가 의결한 당대표 선거 '선호투표제' 도입이 당헌·당규 위배 논란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더불어민주당 전당준비위원회가 당대표 선거에서 도입하기로 의결한 선호투표제를 놓고 당권주자들의 반응이 엇갈리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 당권주자인 정청래 전 대표(왼쪽부터), 송영길 의원,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3일 서울 용산구 한 호텔에서 열린 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해 한 테이블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친청(친정청래)계가 선호투표제 도입이 당헌당규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발하자 전준위가 재논의에 착수하며 '결선투표제'로의 회귀 가능성이 점쳐졌다. 하지만 김민석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찬성파의 입장도 완강해 전준위의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민주당은 9일 선호투표제 도입에 관한 쟁점을 논의하기 위해 전당대회 준비위원회 회의와 최고위원회의를 잇달아 연다. 민주당은 8일 밤에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었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선호투표제는 투표자들이 투표를 할 때 지지하는 후보 1명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 1순위 후보부터 3순위로 지지하는 후보까지 의사를 표명하는 방식이다. 만약 1차 개표 결과 과반 득표자가 없다면 최하위 득표 후보를 탈락시킨 다음, 탈락한 후보를 1순위로 찍었던 투표지들을 다시 열어 거기에 적힌 '2순위' 후보들에게 표를 나누어 배분하는 방식을 반복해 최종 승자를 가린다.
그런데 선호투표제와 관련해 논란의 불씨를 지핀 것은 법리적 정당성 문제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당대표 선출방식으로 '결선투표'가 명확이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낸 조승래 의원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현재 민주당 당헌 제25조 제4호는 당대표 선출과 관련해 '결선투표를 실시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며 "선호투표와 결선투표는 엄연히 다른 방식이며 이를 강행하려면 당헌·당규부터 개정해야 한다"고 정면 비판했다.
선호투표제 도입에 찬성하는 측은 선호투표제도 결선투표제를 실시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당헌당규를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민주당 당규(당직선출규정) 제8장에서 '선호투표(제48조의 2)'와 '결선투표(제48조의 3)'가 각각 별개의 독립된 조항으로 분리해 규정해 놓고 있다. 선호투표를 도입하려면 당헌상 당대표 결선투표 조항을 삭제하거나, 당규를 개정해 '결선투표의 한 방법으로 선호투표를 포함한다'고 명문화하는 당헌·당규 개정 작업이 선행돼야 당헌당규 위배 논란을 없앨 수 있다.
박균택 민주당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결선투표의 어떤 대안으로서 나와 있는 것이 선호투표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호투표는 결선투표가 아니라고 뭔가 의심할 만한 여지가 있으면 아마 당규를 개정하는 문제도 (전준위가) 함께 검토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여기에 선호투표를 도입하면 1위 표만 먼저 개표해 발표할 것인지(부분 개표), 아니면 현장에서 1·2·3순위 표를 한꺼번에 다 발표할 것인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지역 순회경선을 펼칠 때마다 지역 투표 결과와 다른 지역 개표결과를 합산한 중간 결과를 발표해 왔다.
친청(친정청래)계로 분류되는 박규환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선호투표의 경우 당규 제4호 제48조의 2에 따르면 '과반 득표자가 나오기 전 중간 개표 결과'는 공개하지 못한다"라며 "개표 결과를 그때그때 공개하는 '지역별 순회 경선'에는 적용할 수 없는 이른바 '원샷투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당초 전준위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던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도 전날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우리가 헌법을 위반할 수 없듯이, 당헌·당규 위반 소지가 있다면 당원들에게 큰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문제가 많음에도 전준위가 한번 의결한 선호투표제 도입을 폐기하고 결선투표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유력 당권주자인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선호투표제를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전준위가 의결 내용을 바꿔 선호투표제 도입을 취소하면 친석(친김민석)계의 반발이 거셀 가능성이 높다.
김 전 총리는 전날 취재진과 만나 "룰과 관련해 유불리를 따질 일이 아니다"라며 "전준위나 당에서 한 번 정해진 룰은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맞으며 이를 두고 치사하게 공방을 벌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호투표제에 반대 의사를 밝힌 친청계 인사들과 정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으로 읽힌다.
당대표에 출마한 송영길 의원 캠프도 이날 입장문을 내어 "유불리에 따라 하루아침에 찬성반대 입장을 바꿔가며 선호투표제를 흔드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라며 "잊혔던 선호투표제를 되살린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친석(친김민석)계'와 찬성파들이 선호투표제를 사수하려는 배경에는 정치적 셈법이 깔려있다는 시각도 있다. 선호투표제가 도입되면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더라도 탈락한 하위 후보들의 표가 2순위 지정을 통해 송 의원과 지지 기반이 유사한 김 전 총리에게 대거 유입되는 '자동 단일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학에서 거론되는 선호투표제의 가장 큰 장점은 '네거티브(상호 비방) 선거 운동을 눈에 띄게 완화한다'는 점이다. 선호투표제에서는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2순위 표'를 얻는 것이 당락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인데 특정 후보가 경쟁 후보를 완전히 적으로 돌려세우고 그 후보의 이미지를 깎아내려 하면 2순위 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전국당원대회 준비위원회 위원들이 지난 6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준비위 1차 회의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준위가 선호투표제를 선택한 배경에는 결선투표제를 실시하기 위한 물리적, 시간적 비용을 줄임과 동시에 후보들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는 '네거티브' 분위기를 최대한 낮춰 당의 분열을 최소화하겠다는 명분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 당권경쟁 구도를 살펴보면 정청래 전 대표는 우군이 없고 김민석 전 국무총리와 송영길 의원은 연대하는 방향으로 짜여져 있다.
김 전 총리는 정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더라도 송 의원을 지지하는 표를 얻을 수 있지만 정 전 대표는 2순위 표를 확보하려면 김 전 총리에 대한 비판 수위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호투표제를 강행하고 논란을 없애기 위해 당무위원회와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당헌당규를 뜯어고친다면 전당대회 실시 직전에 '특정 후보 맞춤형 룰 개정'이라는 당내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정청래 전 대표의 법률대리인 역할을 맡게 된 이지은 전 민주당 대변인은 9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결선투표제가 실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당대회와 관련해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을 두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거나 소송을 하면 가처분이 인용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며 "(현재로서는) 결선투표만 당헌당규에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선호투표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