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스마트안경을 사용해 여성을 동의 없이 촬영하는 등 성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스마트안경의 보급률이 낮은 편이지만 벌써 피해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앞으로 피해 확산이 우려된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2025년 11월17일 미국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시에서 열린 메타 커넥트 이벤트에서 메타 레이반 AI 스마트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9일 보그를 비롯한 글로벌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글로벌 빅테크 메타가 내놓은 스마트안경을 두고 여성층에서 반발이 늘고 있다. 무엇보다 스마트안경의 촬영 기능을 악용하는 성범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안경을 이용해 영상을 찍으려면 안경테에 있는 촬영 버튼을 빠르게 누르거나 혹은 음성으로 촬영을 시작하겠다고 지시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촬영한 영상은 스마트안경에 저장되며 외부 AI앱으로 옮긴 다음 틱톡 등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릴 수 있다.
현재 스마트안경 시장은 메타가 선도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이 2026년 1분기 기준 69.2%에 이른다. 메타의 레이반 AI 스마트안경은 실제 안경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지만, 촬영을 시작하면 작은 LED 전구가 켜지는데 이 기능을 해제하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실제로 스마트안경을 이용한 여성 대상 범죄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시에서는 한 남성이 성관계 직전에 스마트안경을 이용해 영상을 촬영하려다가 상대방에게 들켜 경찰에 체포당했다.
메타 내부에서도 스마트안경을 이용한 성관계 영상 촬영에 관련한 폭로가 있었다.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메타 스마트안경 데이터 주석을 하는 직원들은 스웨덴의 스벤스타다그블라데트 신문에 "성관계 영상이나 성적인 영상도 많다"며 "일부 영상에서는 찍히는 상대방이 자신이 촬영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 직원들은 메타 스마트안경이 찍은 영상 중 일부를 이용해 AI가 이미지나 영상의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도록 태그하는데, 촬영자 자신도 성관계 영상이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고, 촬영자만 알고 상대방은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외신에 따르면 가장 흔한 범죄 사례는 여성혐오적인 콘텐츠 제작자가 길거리에서 모르는 여성들에게 다가가 대화나 질문을 하고 동의 없이 이들의 영상을 틱톡이나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플랫폼에 올리는 것이다.
뉴욕포스트는 4월15일 여성 대상 게릴라 영상을 두고 "이런 영상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틱톡, 인스타그램에 빠르게 퍼지는데 영상 속 여성은 자신이 카메라에 찍히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셀 수 없는 폭력적이고 성적인 댓글이 달리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스마트안경은 이 때문에 '변태 안경'이라고까지 불리게 됐다"고 보도했다.
BBC는 5월7일 한 여성의 제보를 인용해 "피해자들이 영상을 내려달라고 해도 무시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한 피해자기 자신의 동의 없이 스마트안경으로 촬영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삭제할 것을 요청하자 영상을 올린 남자는 돈을 낼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더럼대학의 법학과 교수이자 여성 대상 폭력 전문가인 클레어 맥글린은 1월2일 더타임즈에 "여성들에게 스마트 안경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며 "여성들은 이미 사적인 공간, 성행위, 공공장소 등 어디에서든 동의 없이 촬영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데, 스마트 안경은 이러한 괴롭힘과 학대의 기회를 훨씬 더 크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맥글린 교수는 가장 큰 우려 사항으로 스마트안경으로 여성과 어린아이를 찍은 영상을 AI를 이용하거나 기존 영상을 이용해 나체로 합성하는 소위 '딥페이크 범죄물'이 늘어날 가능성을 꼽았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는 스마트안경에 관해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영국 여성폭력종신연합의 정책 및 캠페인 책임자인 레베카 히친은 2월9일 CNN에 "동의 없는 촬영 자체가 여성의 사생활 보호권 침해"라며 영국 정부가 이런 새로운 위협에 대응할 수 있게끔 법률을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아일랜드에서도 인공지능 위원회 소속인 로라 하먼 상원의원은 지난 5월20일 이번 주 코크시에서 여성들이 직장이나 응급 상황에서 무단 촬영을 당했다는 보고를 접했다고 말하며, 아일랜드에서 사생활 보호를 위해 오락 목적의 촬영에 인공지능 안경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내는 아직 스마트안경의 보급률은 낮은 편이라 이를 사용한 성범죄는 많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앞으로 스마트안경의 보급률은 빠르게 상승한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한상열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AI 스마트안경의 국내 시장 규모를 보여주는 통계는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라며 "다만 한국은 스마트폰 및 웨어러블 기기 수용도가 높은 편이고 AI 서비스 활용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어 초기 시장 형성은 비교적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국내에서도 스마트안경을 이용한 디지털 성폭력 피해사례가 발견됐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이번 달 8일 자신과 데이트하는 여성을 AI 스마트안경으로 무단 촬영하고 영상을 SNS에 올린 혐의로 A씨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총 6명으로 파악됐고, 한 피해자는 메타 AI 스마트안경의 촬영 표시등이 가려져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