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할리우드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인공지능(AI) 배우'가 장편 영화의 주연을 맡는다.
6일(현지시각) 미국 연예 전문매체 데드라인은 AI 배우 틸리 노우드가 코미디 영화 '미스얼라인드(Misaligned·어긋남)'의 주연으로 캐스팅됐다고 보도했다.
'미스얼라인드'는 육체도 유년기도 없는 AI인 틸리가 악성 봇의 영향으로 욕망과 충동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틸리 노우드는 갈색 머리에 영국식 억양을 사용하는 AI 여배우로, 지난해 10월 스위스 취리히 영화제 부대행사에서 처음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등장 직후부터 할리우드 배우들과 방송인 노동조합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노우드는 배우가 아니다"라며 AI가 인간 배우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틸리 노우드를 탄생시킨 네덜란드 배우 겸 프로듀서 엘린 판데르 펠덴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미스얼라인드'는 분명 재미있고 혼란스러우면서도 자기 인식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여전히 스칼릿 조핸슨과 라이언 레이놀즈를 보고 싶어 할 것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서 '겨울왕국'의 엘사를 연출하듯 컴퓨터그래픽(CG) 캐릭터 역시 하나의 배우처럼 연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배우 '틸리 노우드'. ⓒSNS
영화 산업에서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영화 '록키', '람보' 시리즈의 주연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은 AI 스토리텔링 스타트업 라르고닷AI에 투자했으며, AI 디에이징 기술을 활용해 본인의 대표작 '람보'의 프리퀄 출연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칸 필름마켓에서도 생성형 AI 기반 영상 제작과 스토리텔링의 변화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잇따라 마련됐다. 국내에서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주요 영화제 가운데 가장 먼저 AI 섹션을 신설하며 관련 창작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다.
반면 AI 시대 영화의 역할과 창작의 본질을 둘러싼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멕시코 출신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최근 칸 영화제에서 '판의 미로' 복원판 상영 행사에 참석해 AI 중심의 제작 문화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처럼 AI의 영화 산업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관련 제도를 정비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골든글로브는 최근 AI 활용 기준을 새롭게 마련했다. 인간 배우의 연기를 보조하거나 강화하는 수준의 AI 활용은 허용하되,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를 허가 없이 AI로 복제한 작품은 심사 대상에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생성형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영화 제작 방식은 물론 배우의 권리와 저작권, 창작의 경계까지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더욱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