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개막 이후 좀처럼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월드컵 유치를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내세웠던 그가 정작 대회가 시작된 뒤 사실상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FIFA 월드컵 트로피 앞에 두고 발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2일(현지시각)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회 개막 후 22일 동안 82경기가 치러지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월드컵 경기장을 찾지 않았다. 현재까지 공개된 일정 역시 오는 19일 미국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결승전을 관람한 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함께 우승팀에 트로피를 전달하는 행사뿐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월드컵 개최와 관련해 인판티노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 경기 이상은 꼭 보고 싶고, 한 달 동안 여러 개최 도시를 순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행보는 이와 전혀 달랐다. 월드컵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처럼 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정작 세계 최대 스포츠 축제에서는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셈이다.
가디언은 이러한 배경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과 월드컵이라는 행사 자체의 특성을 함께 지목했다. 월드컵은 5~6주 동안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국제 행사인 만큼, 반이민 정책과 다문화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온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메시지가 평소보다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회 기간 미국 이민세관집행국(ICE)은 다른 지역에서는 단속 활동을 이어갔지만, 월드컵 개최 도시 주변에서는 단속 활동을 자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는 기간 동안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개최 도시들의 정치적 성향도 무시하기 어렵다. 이번 월드컵 미국 개최지는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등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대도시가 대부분이다. 특히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급진 좌파 도시"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지역이다. 그곳에서 경기장을 찾는다면 관객의 거센 야유를 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대회 기간에도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국제사회의 비판은 이어지고 있다. 소말리아 국적의 심판 오마르 압둘카디르 아르탄은 마이애미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해 월드컵 참가가 무산됐다. 이란 축구대표팀 핵심 관계자들은 미국 비자를 발급받지 못하면서 대표팀 훈련지를 미국 애리조나에서 멕시코 티후아나로 옮겨야 했다.
이란과 아프리카 출신 다수의 언론인들 역시 취재 비자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이 미국의 이민·비자 정책과 맞물리며 또 다른 정치적 논란의 무대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지난해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의 기억도 부담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당시 첼시와 파리 생제르맹의 경기 직후 시상식에서 우승팀에 트로피를 전달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그는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로부터 거센 야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