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사람을 죽이며, 산불이 숲을 집어삼켜도 관심은 며칠을 넘기지 못한다. 전쟁보다 많은 인명 피해를 내는 이상기후가 심화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막상 재난이 닥칠 때만 잠시 떠들썩할 뿐, 거듭된 경고음에 이상하리만큼 무관심하다.
폭염에 연설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I 이미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는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손에 쥐고 있다. 기후학자와 생태학자, 국제기구는 오래전부터 기후위기를 경고해 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직은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집단적 무관심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통렬하면서도 유쾌하게 풍자한 작품이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올해는 시원하네~ 장담할 수 있어?
역대급 폭염이었던 지난해 여름, 여의도 일대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연합뉴스
올해 6월만 놓고 보면 한국의 여름은 의외로 견딜 만했다.
평년보다 장마가 늦어지면서 낮은 습도가 유지됐다. 실제 2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6월 서울의 평균 습도는 61%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70%)은 물론 평년(66%)보다도 크게 낮은 수치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는 생각보다 덥지 않은데’라는 느끼는 이유다.
그러나 기상 전문가들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문제는 장마가 끝난 이후다. 7월 말부터는 유럽을 덮친 '오메가 블록'과 유사한 대기 정체 현상이 한반도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북쪽의 티베트고기압과 남쪽의 북태평양고기압이 동시에 한반도를 덮는 '이중 열돔'까지 형성될 경우 지난해처럼 40도 안팎의 극한 폭염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유럽은 이미 지난달부터 프랑스와 스페인, 독일 등에서 40도를 넘는 폭염으로 사망자가 속출했고, 미국 역시 체감온도 43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폭염이 조만간 한반도에도 닥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기후위기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기후위기 경고는 새롭지도 않다.
기후학자와 생태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 왔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움직이지 않을까?
그 질문에 가장 재치 있으면서도 씁쓸한 답을 내놓은 작품이 바로 애덤 맥케이 감독의 영화 '돈 룩 업'(2021)이다.
영화는 대학원생(제니퍼 로렌스)과 천문학 교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거대한 혜성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지구종말이 머지 않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 백악관을 찾아가고 언론에 출연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참으로 현실적이다.
영화 '돈 룩 업' 중 백악관 회의 장면. ⓒ넷플릭스
"이봐요. 지금 당신이 100% 죽는다고 얘기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누가 봐도 미친 소리 잖아요. 본론부터 얘기합시다. 그래서 얼마가 필요한데요" (영화 중 백악관 내에서 나온 대화)
"여기서는 나쁜 소식도 가볍게 다루는 편이라", "약도 달아야 먹기 편하죠" (영화 중 토크쇼에서의 나온 대화)
세상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음모론자가 되고, 지구 멸망은 정치 토론의 소재로 소비된다. 인류와 지구의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가 어느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흩어져버린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절실하게 호소하지만, 관객은 계속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극의 전개가 황당무개하고 비현실적이라고 쉽게 말할 수도 없다. 미국 정치 현실과 인간 사회의 모순으로 실제 저런 일이 벌어질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인류 멸망보다 중한 것은 뭘까요?
기존 재난영화의 문법이라면 전문가들의 혜성 충돌 경고가 나오자마자 미국 대통령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온갖 대책을 검토했을 것이다. 처음엔 무시했더라도 곧장 대통령은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각료 회의를 소집한다.
영화 '돈 룩 업'에서 미국 대통령으로 분한 배우 메릴 스트립.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에서도 대통령(메릴 스트립)은 혜성 요격 작전이라는 특단의 대책을 밀어붙인다. 다만 이는 자신의 남성 편력 스캔들로 지지율이 폭락하자 '지구를 구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해 이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다. (#이하 영화 내용의 스포일러가 포함됨)
하지만 이 마저도 오래가지 않는다.
혜성 안에 막대한 희귀 광물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 최고 부호이자 기업가(마크 라이런스)는 혜성 요격 계획을 중단시키고 '부수지 말고 채굴하자'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정치권은 혜성 요격 계획을 두고 또 다시 새로운 혼돈의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 속 혜성을 두고 '눈 앞에 들이닥친 재앙'의 은유라 풀이한다.
기후위기, 환경오염, 생태계 붕괴처럼 이미 과학적으로 존재가 입증됐지만 정치적 계산과 경제 논리에 의해 외면당하는 모든 재난의 은유라는 것이다.
영화 제목인 '돈 룩 업(Don't Look Up)', '하늘을 보지 말라'는 뜻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라는 사회적 압력, 그리고 그 현실을 유지하려는 권력과 기득권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AP=연합뉴스
최근 세계 곳곳을 보면 영화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미국은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7월4일 독립기념일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워싱턴DC의 낮 최고기온은 38~40도에 이를 것으로 예보됐다.
그런데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섭씨 41도 가까운 더위 속에서도 아주 긴 연설을 해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오래전부터 기후위기를 과장된 주장 또는 민주당의 정치적 프레임으로 치부해 왔다. 기후변화 대응이 화석연료 산업 규제와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공격했다. 과학의 경고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되는 모습이고, 건강이 위협 받을 수 있음에도 고집을 부리겠다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 혜성을 돈 벌이로 보는 영화 속 기업인을 연상시킨다.
그는 최근 우주 개발 전략의 우선순위를 화성보다 달에 두겠다고 밝혔다. 화성은 실현까지 20년 이상 걸리지만, 달에는 10년 안에 영구 거점을 건설할 수 있다는 계산을 내놓는다. 달의 자원을 활용해 인공위성을 생산하고 더 먼 우주 개발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우주 개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복되는 발사 실패와 폭발, 광범위하게 흩어진 로켓 잔해, 해안 오염 문제는 또 다른 환경 부담을 낳고 있다. 실제로 멕시코 정부는 자국 영토와 해역으로 떨어지는 발사체 잔해와 환경오염 문제를 이유로 국제법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끝으로…
영화 '돈 룩 업' 포스터.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은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난다. 다행히 현실의 기후위기는 영화 속 혜성처럼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재앙이 아니다.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아직은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면 혜성 충돌에 버금가는 파괴력으로 지구와 인류를 위협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