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타밀나두주 카루르 지역의 한 공장에서 2026년 5월13일 노동자들이 머리에 고프로(GoPro) 카메라를 착용한 채 작업 동작을 기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카메라를 착용한 노동자들은 자신이 항상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됐다. 대화는 줄어들었고,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더욱 신경을 쓰며 작업에 몰두했다. 얼핏 보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감시 카메라처럼 보이지만, 기업들이 원하는 건 노동자들의 행동 데이터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4일(현지시각) 인도 공장의 사례를 소개하며, 인간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을 1인칭 시점으로 기록한 이른바 '자기중심적(egocentric) 데이터'가 미래 휴머노이드 로봇의 핵심 학습 자원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늘 노동자들이 남기는 작업 기록이 내일 생산 라인에서 인간을 대신할 로봇의 학습 데이터가 되는 셈이다.
로봇을 가르치는 인간의 노동 데이터
인도 첸나이의 한 가정에서 주부 나기레디 스리라미야찬드라(Nagireddy Sriramyachandra)가 2026년 5월15일 머리에 착용한 스마트폰으로 망고를 써는 자신의 동작을 모션 캡처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AFP/연합뉴스
로봇이 인간처럼 물건을 잡고, 이동하고,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실제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학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장과 창고는 물론 상점, 사무실, 가정 등 다양한 환경에서 촬영된 방대한 양의 영상이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로봇이 현실 세계를 안정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수십억 시간에 달하는 인간 활동 데이터가 필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개발자들은 이 데이터를 활용해 로봇이 인간의 행동과 작업 방식을 보다 정교하게 모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개별 노동자에게 비용을 지불하며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보다 공장과 계약을 맺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대규모 학습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경쟁 속 커지는 데이터 수집 산업
엔지니어들이 2026년 5월13일 타밀나두주 카루르 지역에 위치한 AI 데이터 기업 '오브젝트웨이즈(Objectways)' 사무실에서 모션 캡처를 통해 기록된 동작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 같은 데이터 수집은 이미 인도 곳곳의 공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인도의 데이터 수집 기업인 에고랩(EgoLab)은 하리아나주 구루그람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머리 장착형 카메라를 착용하게 한 뒤 작업 영상을 수집하고 있다. 이 회사의 고객사 가운데는 전기차 업체 테슬라도 포함돼 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미래 테슬라 기업 가치의 상당 부분이 전기차가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에서 나올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인간의 작업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인도는 글로벌 AI(인공지능) 데이터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인도는 전 세계 AI 학습용 데이터 시장의 약 35%를 차지하고 있으며, 관련 매출의 약 60%는 미국 고객으로부터 발생한다. 값싼 노동력과 거대한 인구 규모가 AI 학습용 데이터 공급망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생활 침해 논란과 데이터 가치 배분 문제
한 여성 노동자가 2026년 5월13일 인도 타밀나두주 카루르 지역에 위치한 AI 데이터 기업 오브젝트웨이즈(Objectways) 사무실에서 머리에 RGB 카메라를 착용한 채 색깔 블록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며 모션 캡처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가장 큰 논란은 사생활 침해와 노동권 문제다. 머리에 카메라를 단 노동자들은 작업 장면뿐 아니라 일상의 움직임까지 기록될 수 있다. 만약 노동자가 카메라를 착용한 사실을 잊은 채 화장실이나 휴게 공간으로 이동한다면 어디까지가 업무 데이터이고 어디부터가 사생활인지 경계는 모호해진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남는다. 노동자들은 촬영에 대한 임금을 받지만, 노동자들의 행동 기록이 담긴 데이터가 미래 AI 산업에서 창출할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늘 기록되는 노동자의 손놀림과 움직임이 내일의 로봇을 훈련시키는 교과서가 되고 결국 그 로봇이 노동자를 대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이동통신 시스템 협회(GSMA)의 CEO 겸 이사인 존 호프먼(John Hoffman)이 2026년 6월 24일 상하이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개막식에서 휴머노이드 로봇과 함께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데이터가 창출하는 가치에 대한 몫을 받아야 하느냐는 가디언의 질문에 한 노동자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 로봇이 우리를 대체하게 되면, 그때는 누가 우리에게 돈을 주겠나?"
인간의 노동은 지금도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간의 노동과 움직임은 이제 영상 데이터로 기록돼 AI 모델에 입력되고, 로봇은 그 패턴을 학습해 다시 인간의 동작을 재현한다. 일종의 '복사된 노동'이 미래의 AI 로봇에 옮겨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 데이터의 가치를 누가 소유하고, 누가 보상받느냐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