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 공연에서 살아있는 문어와 낙지를 관객들 앞에서 죽이는 장면이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잔인한 연출이라는 비판과 과도한 동물권 보호라는 반론이 맞서는 가운데, 동물권 보호의 적정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하고 있다.
현대무용 무대에 산낙지가 올라간 모습을 보고 관객이 놀라고 있다.(왼쪽). 산낙지를 먹는 손님들. AI로 만든 이미지.
12일 동물권단체 케어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열린 국제현대무용제의 공연작 '도파민네이션(Dopaminenation)'에서 살아있는 낙지와 문어를 죽이는 장면이 무대 위에 펼쳐졌다.
케어는 "낙지와 문어를 발로 밟고 입으로 물어뜯는 장면, 전자레인지에 넣는 장면이 있었으며 마지막에는 찢어 던지는 연출까지 등장했다"며 "예술은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인간을 성찰하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어떠한 예술적 목적도 실제 생명체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공포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논란에 공연 측은 문제가 된 장면을 삭제하기로 결정하고 "관객들에게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입장을 밝혔다.
동물이 등장하는 공연이나 드라마, 영화가 동물권 논란에 휩싸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2022년 방영된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은 촬영 과정에서 말 학대 논란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제작진은 이성계가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말의 앞다리를 밧줄로 묶은 채 달리게 했고, 말은 강제로 넘어졌다. 퇴역 경주마였던 해당 말은 촬영 일주일 뒤 폐사했다. 이후 동물권단체들은 제작진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사건은 검찰에 송치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관련 민원이 800건 이상 접수되며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다만 이번 공연을 둘러싼 여론은 이전 사례들과 달리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공연에 사용된 문어와 낙지 역시 생명체인 만큼 학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동물 보호를 어디까지 확대해야 하느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산낙지 먹는 우리나라 수산물 소비 문화를 언급하며 "그렇다면 수산시장 상인들도 모두 사과해야 하는 것이냐"는 반응도 적지 않다.
논쟁의 배경에는 현행 법체계의 '한계'도 자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등 척추동물을 중심으로 적용된다. 문어와 오징어 같은 두족류, 게 새우 바닷가재 등 갑각류는 보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동물보호법이 동물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 중심으로 규정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각국은 최근 동물복지의 범위를 점차 확대하는 추세다. 영국 환경·식품·농무부는 2025년 발표한 '영국 동물복지 전략'에서 두족류와 갑각류를 산 채로 삶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도살 방식'이라고 규정하고 관련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스위스와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에서는 갑각류나 두족류를 산 채로 삶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조리 전 전기충격이나 냉각 과정을 통해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이 같은 입장을 내놓은 배경에는 두족류와 갑각류가 통증을 인식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있다. 영국에서 나온 2021년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문어는 상처 부위를 어루만지는 회피 행동을 보이고, 통증을 장기간 기억하며, 생쥐 수준의 미로 학습 능력과 사람의 얼굴을 구별하는 능력까지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게 역시 고통 자극이 단순 반사가 아닌 뇌에서 처리된다는 증거가 확인됐다.
전 세계적으로 동물권 보호 범위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며, 특히 선진국일수록 관련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가늠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또한 동물권 문제는 단순히 동물 복지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후위기와 환경 파괴,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와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점에서 동물권 확대 움직임을 단순한 선민의식이나 감성적 접근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