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6월1일부터 열리는 서울퀴어문화축제뿐만 아니라 기독교 단체가 주최하는 반동성애 집회인 '거룩한 방파제 통합 국민대회'에도 모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혀 반발을 사고 있다.
2024년 6월1일 오후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종각역을 출발해 삼일대로를 지나 을지로 방면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왼쪽).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2025년 12월10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77주년 2025 인권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려다 인권단체 회원들에게 저지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소수자의 인권 행사와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반동성애 집회를 동일 선상에 놓는 태도는 혐오와 차별에 맞서야 할 인권위가 '중립'을 핑계로 양측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인권 가치 왜곡" "인권위 사유화", 인권위원장 향한 비판 확산
이에 퀴어축제 조직위원회는 지난 5월22일 입장문을 통해 "인권위가 성소수자의 존엄과 권리를 요구하는 축제와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혐오를 선동해 온 집회를 동일 선상에 놓고 대응하겠다는 것은 인권의 가치를 왜곡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한 조직위는 안 위원장이 반동성애 집회 불참 등 제시한 조건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올해 인권위의 축제 부스 참여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창호 국가인권회 위원장. ⓒ연합뉴스
이러한 논란은 인권위 내부의 전면적인 비판으로 번졌다. 이숙진 인권위 상임위원은 5월28일 열린 제17차 상임위원회에서 안 위원장을 향해 "인권위를 사유화하고 있다"고 정조준했다.
이 상임위원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행사와 성소수자 인권을 침해하는 행사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위원장의 발언을 들었다"며 지적했다.
논란은 지난 5월22일 열린 제9차 전원위원회에서 본격화됐다. 당시 인권위원 3인 이상이 제출한 '성소수자 혐오 차별 예방을 위한 퀴어문화축제 참여 추진 의결의 건'이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인권위에서는 통상 위원 3인 이상이 발의한 안건은 별도 표결 없이 상정해 왔던 것이 관례였다. 이 때문에 안 위원장이 성소수자 관련 안건만 의도적으로 가로막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2017년부터 매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해온 인권위는 안 위원장 취임 이후 처음으로 2025년 행사에 참여하지 않게 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인권위원장을 향한 자격 논란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2025년 5월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념식장에 도착한 뒤 시민 단체의 항의에 발길을 돌리고 있다. ⓒ연합뉴스
안 위원장을 둘러싼 자격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직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인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퇴임 후 차별금지법 반대 활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왔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나이, 출신 국가, 인종, 종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법안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을 권고하거나 구제 절차를 지원하도록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2007년 이후 여러 차례 국회에 발의됐지만 종교계와 보수단체 등을 중심으로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제기되면서 아직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언론 기고, 유튜브 출연, 동성애반대법률가모임 활동 등을 통해 법안 제정을 공개 비판해왔다.
안 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거나, 성소수자 축제로 인해 "신체 노출과 그에 따른 성 충동으로 성범죄가 급증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소수자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 수장으로서 부적절한 인식을 가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혐오 발언했다" 인권위원장 향한 최초의 진정
무엇보다 논란을 키운 것은 안 위원장이 인권침해 진정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인권위 출범 24년 역사상 현직 인권위원장이 진정 대상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공무원노조 인권위지부는 2025년 7월29일 내부 게시판을 통해, 안 위원장이 "동성애자 아니죠?", "에이즈에 많이 걸려서 걱정된다" 등의 발언을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는 독립성과 인권 보호 기능이 크게 약화됐다는 우려 속에 국제 인권기구연합체(GANHRI)의 특별심사 대상에까지 올라 있는 상태다.
2024년 12월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2024 인권의날 기념식' 행사장 앞에서 시민단체 국가인권위원회바로잡기공동행동 관계자들이 비상계엄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하지 않은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의 입장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안 위원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2024년 9월 취임 당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음에도 임명이 강행되어 시작부터 잡음이 일었다.
취임 전에는 청문회 자격 논란으로, 취임 이후에는 성소수자 인권 논란과 파행적 조직 운영으로 비판이 이어지면서 국가인권위원장으로서 적합한 인물인지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 위원장의 임기는 2027년 9월5일까지다.
차별받는 소수자를 위한 축제, 인권위는 누구를 보호해야 하나
2025년 6월14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에서 제26회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을지로 입구까지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논란 속에서 2026 서울퀴어문화축제는 1일부터 '교집합: 다름을 연결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막을 올린다. 이번 축제는 오는 28일까지 이어지며,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퀴어퍼레이드는 오는 13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와 우정국로 일대(을지로입구역~종각역 구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퀴어축제는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야 했던 성소수자들이 벽장 밖으로 나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자리다. 성소수자의 존재와 권리를 알리고 차별과 혐오에 맞서기 위해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인권 행사이기도 하다. 성소수자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반동성애 집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차별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6년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성소수자 정체성과 관련한 차별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성인 27.1%, 청소년 21.8%에 달했다. 우울 증상이 의심된다는 응답 역시 성인 45.8%, 청소년 69.0%로 일반 인구보다 약 4배 높은 수준이었다.
인권위가 보호해야 할 대상 역시 이러한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 소수자들이라는 점에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축제와 성소수자 존재 자체를 부정해 온 집회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국가인권위원장의 태도가 과연 인권의 가치에 부합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