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고 증권 뜬다’는 말이 금융권 안팎에서 계속 흘러나올 정도로, 증권사들이 각 금융그룹들의 실적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KB증권 역시 이런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회사다.
KB증권은 올해 1분기 3478억 원의 순이익(지배주주 귀속 기준)을 냈다. 이는 지난해 1분기보다 무려 93.3% 급증한 수치다. 같은 기간 KB금융그룹의 순이익이 1조6991억 원에서 1조9165억 원으로 2174억 원 늘어났는데, 이 증가분 가운데 1679억 원이 KB증권에서 발생했다. 사실상 그룹 전체의 실적 성장을 KB증권이 이끈 셈이다.
증권사들의 대두와 함께, 올해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선진화 의지와 맞물려 지배구조 개선책을 줄곧 내놓고 있는 KB금융그룹의 최중요 계열사로서 KB증권 이사회 운영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다.
KB증권은 비록 비상장사이긴 하지만 고객의 막대한 자산을 다루는 초대형 금융기관이다. 금융업 특성상 지배구조의 선진성은 ‘고객의 신뢰’ 및 ‘위기 관리 능력’과 직결된다. 비상장사라는 형식적 지위보다 이사회의 실질적 투명성과 통제 시스템이 훨씬 중요한 이유다.
KB증권은 주요 증권사 가운데 사추위와 임추위를 분리하고 있는 몇 안되는 증권사다. 사진은 강진두 KB증권 각자대표이사. ⓒ허프포스트코리아
◆ 주요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사추위·임추위 분리, 다양성·독립성 확보 노력
26일 KB증권의 1분기 영업보고서에 따르면 KB증권 이사회 구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긍정적 대목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와 분리해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추위, 보상위원회, 감사위원회를 독립적으로 구성하도록 한 한국ESG기준원의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충실히 이행하는 조치다.
실제로 1분기 순이익 기준 5대 증권사(미래에셋, 한국투자, 키움, NH투자, 삼성)와 4대 금융그룹 계열 증권사(KB, 신한, 하나, 우리)를 모두 살펴보더라도 사추위를 임추위와 분리한 곳은 KB증권 단 한 곳뿐이다. KB증권은 사추위에 더해 감사위원후보추천위원회까지 임추위와 분리해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이사회 독립성을 더하고 있다.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가 맡고 있는 점도 KB증권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여주는 주요 장치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과 모범규준상 선임사외이사를 두는 조건으로 대표이사의 의장 겸임이 가능하지만, 사외이사가 의장을 맡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또한 사외이사 4명 중 2명을 여성으로 선임해 이사진의 성별 다양성까지 확실히 보장하고 있다.
KB증권 관계자는 “후보 추천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임추위를 기능별로 세분화 해 운영하고 있다”라며 “추천 대상자별로 요구되는 이해상충 관리 및 독립성 확보 수준이 상이한 점을 반영해 법령상 요건보다 강화된 체계로 운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사추위' 구성은 구조적 허점, 감시 대상인 대표이사가 감시자를 추천
하지만 이사회의 독립성 측면에서 약점도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진적으로 임추위에서 분리운영하고 있는 사추위의 구성이 KB증권 이사회의 독립성을 구조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통로로 작용하고 있다.
KB증권이 금융투자협회에 제출한 1분기 영업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사추위는 강진두 KB증권 각자대표이사와 남혜정, 김인숙 사외이사 등 총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ESG기준원의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감사위, 보상위, 그리고 사추위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추위 위원의 3분의 2 이상을 사외이사로 구성해야 한다는 금융지배구조법상 법률적 기준은 충족했지만, 엄격한 모범규준의 권고사항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외이사는 이사회 독립성을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이자 최후의 보루다. 실제로 ESG모범규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대한 법률 등에서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법의 대부분이 ‘사외이사 활용’과 연관돼 있다.
이런 사외이사 후보군을 관리하고 추천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 바로 사추위고, 강 대표가 사추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 그들의 감시 대상인 강진두 대표이사가 관여한다는 뜻이다. 이사회의 독립성 보장 장치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는 구조적 우려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해외 주요 거래소들은 사추위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할 것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기도 하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회사 매뉴얼은 "회사는 오직 독립이사(사외이사)들로만 구성된 후보추천위원회(Nominating Committee)를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스닥 상장 규정 5605 조항 역시 "이사 후보 선정은 독립이사가 다수인 전체 이사회, 또는 ‘독립이사들로 구성된 후보추천위원회’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 2025년 대표의 사추위 참여 올해도 이어진다, 이사회 의결 사외이사 반대표 '0건'의 이면
KB증권의 2025년 지배구조 연차보고서를 살펴보면, 2025년에는 강진두 대표이사가 아닌, 지난해 말까지 KB증권 IB부문을 맡고 있었던 김성현 대표이사가 사추위에 참여했다.
당시 김성현 대표는 2025년 열린 3차례의 사추위에 모두 참석해 사외이사 후보 추천 안건에 100% 찬성표를 던졌다. 그리고 2025년 한 해 동안 KB증권의 이사회 및 산하 소위원회의 모든 결의에서 사외이사가 행사한 반대표는 단 한 표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사외이사의 반대표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것은 KB증권만의 문제가 아닌 국내 재계 전체에 만연한 거버넌스의 문제다. 또한 이사회 회의 과정에서 충분한 갑론을박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찬성 의견을 모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단순한 ‘숫자’만 놓고 보면, 사외이사라는 경영진 견제장치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증권업계에서 사외이사들이 결의사항에 반대표를 던지는 사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올해 1분기 순이익 기준 증권업계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의 이사회는 내부통제위원회 설치 과정에서 원안인 '반기 1회 개최' 안건에 제동을 걸고,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분기 1회 개최'로 수정한 뒤에 가결시켰다. 임직원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부여 안건 역시 이사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보류됐다. 미래에셋증권의 감사위원회 회의 내역을 살펴봐도 외부감사인 선정 및 절차 안건에 대해 독립이사들이 반대 의견을 던져 부결시킨 사례가 등장한다.
KB증권 관계자는 “사추위는 관련 법령에서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하고 있으며 사외이사가 위원회의 의사결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며 “대표이사의 참여는 회사의 경영환경과 전략방향 및 역량 등에 대한 의견을 제공해 후보 검증의 실효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취지이며 최종 후보 추천 과정에서는 사외이사 중심의 독립적 판단이 이뤄지도록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