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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논란이 불거진 지 8일 만이다.

정 회장은 26일 오전 9시경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에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행사장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검은 정장 차림의 정 회장은 예정된 시간에 맞춰 행사장에 들어섰고, 별다른 인사 없이 곧바로 연단 앞으로 걸어갔다. 단상에 선 그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깊게 허리를 숙였다. 

신세계그룹 회장 정용진의 고개 숙인 5분 그리고 퇴장 : 모든 책임은 제게, 우리 사회의 역사와 희생 기억하겠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안수진 기자

◆정용진 무거운 표정으로 직접 사과, “모든 책임은 저에게, 현장 직원들 따뜻하게 봐달라”

정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준비해온 사과문을 꺼내 들었다.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정 회장은 가장 먼저 “이번 일로 깊은 상처와 실망을 느낀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과 박종철 열사 유가족, 광주 시민,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신세계그룹 회장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사과문을 읽는 도중 몇 차례 원고에서 시선을 떼고 좌중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특히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잠시 말에 힘을 실으며 정면을 똑바로 응시했다.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직접 전달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 회장은 “조사 결과 발표가 늦어진 것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경위를 상세하게 말씀드리기 위해서였다”며 “저를 포함한 신세계그룹 구성원 모두 우리 사회의 역사와 희생을 기억하고 국민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사과에서 정 회장이 힘을 실어 말한 대목은 스타벅스 현장 직원들에 대한 당부였다.

정 회장은 “한 가지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며 “지금도 전국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스타벅스코리아 파트너들과 현장 직원들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책임은 조직과 저를 포함한 경영진에게 있다”며 “이들은 현장에서 자기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성실한 직장인들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전면 재점검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정 회장은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도록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며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고 사회적 책임 기준도 더욱 높이겠다”고 전했다.

사과 발표는 5분 남짓 이어졌다. 예상보다 짧고 간결했다. 별도의 질의응답도 없었다. 정 회장은 준비해온 사과문을 끝까지 읽은 뒤 굳은 표정으로 연단을 내려왔고, 행사장을 빠져나가기 직전 다시 한 번 허리를 깊게 숙여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후 수행 인력들과 함께 빠르게 행사장을 빠져나갔고, 현장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만 남았다.

◆포렌식·교차검증까지, “고의성 입증할 명확한 근거는 아직 없어”

이어진 진상조사 결과 발표에서는 그룹 차원의 내부 조사 내용이 공개됐다. 전상진 경영총괄 부사장을 비롯해 이규봉 경영지원총괄 전무, 김수완 대외협력본부장 부사장, 양종환 감사팀장 상무 등 경영진은 스타벅스코리아 실무진과 결재 라인을 대상으로 휴대전화·노트북 포렌식 조사와 교차 검증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전 부사장은 현재까지 관련 임직원들이 특정 의도를 가지고 마케팅을 기획했다는 명확한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일부 직원들이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했고, 사내 메신저 기록 역시 일주일만 저장되는 구조여서 초기 기획 단계 대화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양 상무는 “행사에 관여한 실무진과 결재 라인 등 총 15명을 대상으로 사내 메일과 업무용 노트북 포렌식 작업을 진행했다”며 “사내 메신저와 업무 수단 전반에 대한 조사를 통해 사전 모의 여부와 관련 증거를 확인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10명 이상에 대한 직접 면담과 교차 검증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조사 과정에서는 일부 직원들이 논란 직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발언을 한 정황도 확인됐다. 관련 직원들은 “기존 텀블러 홍보 문구와 라임을 맞추는 데 집중했을 뿐 5·18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타벅스코리아 내부의 마케팅 검증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에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고 인정했다. 문제의 마케팅은 팀장·본부장·대표이사 등 여러 단계의 승인 절차를 거쳤지만, 어느 누구도 ‘5월 18일 탱크데이’ 표현의 부적절성을 지적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일부 승인자는 디자인 시안 첨부파일조차 열어보지 않은 채 결재한 사실도 확인됐다.

◆“광주 직접 갈 의향 있나” 질문에 행사장 다시 긴장감, “적절한 시점 검토”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그룹 측의 내부 조사 과정과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한 질문이 집중됐다. 사회자가 “질문이 있으신 기자님께서는 손을 들어달라”고 말하자 행사장 곳곳에서 손이 올라왔고, 짧았던 사과 발표와 달리 질의응답은 비교적 길게 이어졌다.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진 건 광주 지역의 한 매체(남도일보) 기자가 마이크를 잡으면서였다. 정 회장의 사과가 광주가 아닌 서울 강남에서 진행된 데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질문이었다.

기자는 “이번 일로 전국적인 논란이 있었지만 특히 광주 시민들과 5·18 관련 단체들이 큰 상처를 받았다”며 “회장님께서 공개 사과 외에 직접 광주를 찾아가 5·18 단체나 시민들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질문이 이어지는 동안 행사장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 답변에 나선 신세계그룹 측은 “현재는 진상 규명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면서도 “적절한 시점이 되면 광주 현장 방문이나 공개적 의사 표명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는 정 회장 발언의 의미를 묻는 질문도 나왔다. 그룹 측은 “회장으로서 이번 사안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재발 방지 대책과 그룹 차원의 역사 인식 제고 문제까지 직접 챙기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조직 문화와 역사 인식 부족 문제를 지적하는 질문도 이어졌다. 이에 대해 그룹 측은 “이번 일을 통해 직원들의 역사 의식 수준과 사회적 민감성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20~30대 직원들과 기성세대 사이 역사 인식의 간극도 일부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그룹 전체 차원의 역사 인식 교육과 프로그램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부 결재 시스템 부실에 대한 설명도 나왔다. 그룹 측은 “원래는 CSR과 법무 검토 절차가 함께 작동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해당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전자결재 과정에서 일부 승인자가 첨부파일조차 확인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결재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스타벅스 선불카드 환불 논란에 대해서는 “현재 고객 요구를 인지하고 있으며 관련 부처와 제도 개선을 협의 중”이라며 “조속히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스타벅스 본사의 반응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그룹 측은 “미국 본사 역시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사건 직후부터 조사 상황과 조치 내용을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있고, 내부 통제 개선안에 대해서도 본사와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논란으로 인한 매출 영향에 대한 질문에는 “현재 상당한 매출 감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금은 매출보다 상처를 입은 분들에 대한 치유와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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