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과 K뷰티를 넘어 이제는 ‘K기름’이 글로벌 식문화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관광객들이 서울 전통시장 방앗간을 ‘필수 여행 코스’로 찾는가 하면, 미국과 독일 등에서는 참기름이 한식을 넘어 현지식과 결합한 새로운 조미료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특히 참기름이 단순 식재료를 넘어 건강식과 현지 체험, 프리미엄 향미의 상징으로 소비되면서 K푸드 열풍이 한국인의 생활 문화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의 대표 전통시장으로 꼽히는 종로구 광장시장의 모습. ⓒ연합뉴스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일본 관광객들이 서울 전통시장 기름집에서 구매한 참기름과 들기름 후기를 공유하는 이른바 ‘방앗간 투어’가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엑스 등에는 “주문 즉시 바로 압착해 병에 담아준다”, “병을 여는 순간 퍼지는 향이 일본 제품과 차원이 다르다”는 후기와 인증 사진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특히 참깨와 들깨를 저온에서 은은하게 볶은 뒤 주문 즉시 압착해 병에 담아주는 과정 자체가 일본 MZ세대 사이에서 ‘힙한 로컬 체험’으로 소비되고 있다.
일본의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 사시하라 리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참기름을 소개하며 라면에 참기름을 곁들여 먹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 뒤 일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이 참기름을 생산한 서울 을지로4가 중부시장의 한 기름집이 ‘성지’로 떠오르며 주문 방법과 추천 리스트까지 공유되고 있다.
K기름 열풍의 배경에는 일본 내 건강식 소비 트렌드 변화도 자리하고 있다. 들기름은 이미 일본에서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며 한 차례 유행한 바 있고, 참기름 역시 단순 조미료를 넘어 풍미와 건강을 동시에 챙기는 ‘프리미엄 오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일본 식용유 시장에서도 참기름은 올리브유에 이어 주요 프리미엄 오일군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닛신오일리오그룹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일본 식용유 시장에서 참기름 규모는 약 380억 엔 수준으로 카놀라유와 함께 주요 품목으로 분류됐다.
K기름 열풍은 일본을 넘어 북미와 유럽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86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셰프 유튜버 닉 디지오반니가 컵라면 계란찜 레시피에 참기름과 참깨를 활용한 영상으로 330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캐나다 틱톡커 로건 모핏은 간장과 참기름, 고추기름 등을 활용한 한국식 오이 샐러드 레시피를 유행시키며 ‘로장금’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 레시피는 아이슬란드에서 오이 품절 현상까지 불러올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독일에서는 최근 아스파라거스 소비 증가와 함께 참기름을 활용한 ‘K퓨전 레시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전통적으로 버터와 홀란다이즈 소스를 곁들여 먹던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대신, 최근 독일 MZ세대를 중심으로 간장 글레이즈와 고추장 딥, 참기름 드레싱 등을 활용한 ‘한국 스타일 아스파라거스’ 레시피 검색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수출 시장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오뚜기는 베트남과 중국, 미국, 뉴질랜드 등에 해외 법인을 두고 참기름을 포함한 소스류 수출을 확대하고 있으며 현재 전 세계 70여 개국에 제품을 유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진라면·오뚜기밥·고소한 참기름 등 11개 수출 주력 품목이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의 한국음식안전인증(KFS)을 획득했다.
중소기업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쿠엔즈버킷은 지난해 미슐랭 가이드 선정 싱가포르 레스토랑 20여 곳에 참기름과 들기름 공급을 시작했고, 미국·홍콩·대만 등의 고급 레스토랑에도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청우식품 역시 캐나다 현지 대형 아시안 식품마트에 참기름 스틱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제 K푸드 경쟁력이 단순히 ‘매운맛’이나 ‘라면’에 그치지 않고, 참기름·들기름처럼 한국인의 일상 식문화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류가 대중문화를 넘어 한국인의 생활 문화 전반으로 스며드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