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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앞에서 예술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심사위원 5명이 전원 사퇴하면서 '미술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는 개막 전부터 전쟁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미술계의 올림픽' 제61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개막 : 이스라엘·러시아 국가관 설치에 심사위원 전원 사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2026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전 정문 앞에서 5월5일(현지시각) 경찰이 순찰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으로 국제적 비판을 받아온 러시아와 이스라엘이 올해 국가관 전시에 참여 의사를 밝히자, 비엔날레 재단이 이를 허용한 결정이 갈등의 불씨가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개막을 열흘 앞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국제미술전시 심사위원단 5명이 모두 사임했다.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았던 이란도 지난 4일(현지시각) 행사 불참을 통보했다. 

앞서 심사위원단은 의향서를 통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된 지도자가 있는 국가의 작가와 국가관을 수상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특정 국가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ICC 수사 대상에 오른 러시아와 이스라엘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와 이스라엘은 2024년에는 국제적 제재와 참여 작가들의 반발을 의식해 국가관을 운영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재단이 '모든 국가에 열려 있다'며 참여를 허용했다. 이에 따라 예술 행사의 심사 기준에 국가에 대한 정치적·윤리적 판단이 개입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됐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에 대해 소셜미디어 엑스(X, 옛 트위터)에 "비엔날레를 자유롭고 경계 없는 아이디어의 열린 예술 공간에서 반 이스라엘 정치 선전의 장으로 전략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출신 벨루-시미온 파이나루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AP통신 인터뷰에서 "동등한 예술가로 대우받아야 하며, 인종이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며 "제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예술가이며 평가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크게 두 축으로 운영되는데, 각 국가가 자국 작가를 선정해 독립적으로 전시를 구성하는 국가관과 총감독이 하나의 주제 아래 여러 국가 작가들을 함께 묶어 선보이는 본전시다. 국가관은 국적을 중심으로 한 대표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정치·외교적 논란이 개입되기 쉽다. 이에 반해 본전시는 특정 주제를 바탕으로 작품을 선별하는 만큼 비교적 국제적이고 통합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를 두고 예술계에서는 '예술가의 국적은 어디까지 고려되어야 하는가'라는 해묵은 질문이 다시 등장했다. 한쪽에서는 전쟁과 인권 문제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 채 예술만 분리해 평가할 수는 없다고 본다. 국제적 범죄 의혹이 있는 국가를 배제하는 것은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다는 주장이다.

다른 쪽에서는 예술과 정치는 구분되어야 하며, 국가의 행위로 개인 예술가를 배제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라고 지적한다. 예술의 자율성과 보편성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다.

세계 최대 현대미술 행사가 전쟁 속에서 방향을 잃은 가운데, 예술과 정치의 경계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술계의 올림픽' 제61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개막 : 이스라엘·러시아 국가관 설치에 심사위원 전원 사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2026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전의 아이슬란드관 외부 전경. ⓒAP/연합뉴스

심사위원단의 사퇴로 비엔날레는 결국 기존 심사 방식을 포기하고 관람객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황금사자상과 은사자상 등 기존의 심사위원 중심 시상 체계를 없애고, 관람객의 투표로 수상작을 결정하는 '관객 사자상'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시상 시점도 개막 직후가 아닌 폐막일로 연기됐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6일(현지시각) 사전 공개를 시작으로 약 6개월간 이어진다. 오는 11월 22일까지 이탈리아 베네치아 전역에서 진행된다. 공식 개막은 9일로 예정돼 있다. 주요 전시는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비엔날레는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으로,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1895년 시작돼 올해 61회를 맞았다. 현대 미술 분야에서 2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미술전으로 평가된다.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주제는 '인 마이너 키(In Minor Keys, 단조의 음계로)'로, 차분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지닌 단조 음계를 의미한다. 전쟁과 갈등, 불안이 이어지는 오늘날 세계의 분위기를 비유적으로 담고 있다. 밝고 낙관적인 장조 음계(메이저 키) 대신 개인의 경험이나 주변부의 작고 조용한 목소리에 주목하겠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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