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북한을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약칭 조선)으로 호칭하는 문제를 공식적으로 논의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북한과 관련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발언한 것이 정책적 공론화까지 이어진 것이다. 수십년 동안 지속돼 온 '흡수통일' 대신 '남북 평화적 공존'으로 나아가는 전향적 조치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통일부가 2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사진)이 북한을 '조선'이라 표현한 것에 관해 공론화를 거쳐 결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동영 페이스북
통일부 당국자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재진에게 '조선'이라는 국호 사용 문제에 관해 "다양한 채널을 통한 공론화를 거쳐 정해질 것"이라며 "(정동영) 장관의 말도 공론화 계기에 조선 호칭 사용 방안을 제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이름에 대한 논쟁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으로부터 시작됐다. 정 장관은 올해 1월 통일부 시무식에서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체제를 존중하며 흡수통일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 대신에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을 쓴 것이다.
정 장관은 지난 3월25일 통일부·통일연구원 공동 주최 학술회의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한국·조선, 즉 한조관계” 등으로 북한의 공식 국호를 사용했다.
통일부가 한국정치학회 주최로 29일 열린 ‘평화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 북한인가 조선인가’ 특별학술회를 후원하는 것도 공론화 계기 마련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국제회의에서 자신들을 '노스코리아'(North Korea)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표시해 왔다. 실제 북한 대표부가 2024년 10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우리 대표단의 '노스코리아'(North Korea) 표현을 두고 항의하면서 남북간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도 우리 정부의 표현에 대응해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 아닌 '사우스코리아'(South Korea), 또는 남조선·남측 등으로 호칭해 왔는데 2023년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한 뒤에는 '대한민국'으로 부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2월 제9차 당대회에서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으며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 장관과 통일부의 북한 호칭 공론화 행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언한 '적대적 두 국가 관계'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정책적 전환점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스스로 '조선'이라 불리길 원하는 만큼 국호를 사용함으로써 상호 존중과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진 '통일'보다는 '평화적인 두 국가 관계'를 우선 안착시키려는 실용주의적 접근으로도 풀이된다.
김성경 서강대학교 교수는 이날 학술토론회에서 북한을 '조선'이라 부르는 것을 두고 "이미 공고화된 분단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평화공존과 통일이라는 현실을 만들어갈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북한에) '우리는 당신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상호 존중의 메시지와 '현실에 기반한 새로운 관계의 틀을 모색하고자 한다'는 관계 재설정의 의지, '호명의 비대칭성을 우리가 먼저 해소하고자 한다'는 선제적 신뢰 구축행위를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북한의 국호를 정식으로 인정하고 사용하는 건 헌법에 위배된다는 시각도 있다. 헌법상 북한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데 공식 국호를 쓰는 게 맞냐는 지적이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와 함께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 통일 정책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있다.
조성렬 경남대학교 군사학과 초빙교수는 이날 학술회의에서 "과거 남북 정상회담 등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러왔고 공식적으로 국제관계에서는 조선의 국호로 부를 수 있지만 국내적으로는 헌법정신에 맞춰 북한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