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비의 기준은 ‘지금, 최대한 즐기는 것’이었다. ‘욜로(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삶이잖아!)’라는 말이 상징하듯 여행과 명품, 프리미엄 경험에 과감히 지갑을 여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유통 시장의 풍경은 확연히 달라졌다. 이제 소비자들은 많이 사는 대신, 꼭 필요한 것 하나에 집중하는 ‘요노(You Only Need One, 하나면 충분해!)’로 이동하고 있다.
요노는 단순한 절약이 아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것을 넘어,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빠르게 최적의 하나’를 고르는 소비 방식에 가깝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환경이 장기화되면서 2030세대를 중심으로 소비 패턴이 급격히 바뀌었고, 이는 유통 채널의 경쟁 구도까지 흔들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올다무(CJ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가 있다.
올리브영 매장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모습. ⓒ연합뉴스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들 3사의 지난해 합산 매출은 11조8581억 원으로 12조원에 육박했다. 올다무는 2023년 처음으로 국내 주요 백화점 3사의 매출을 넘어선 이후 격차를 빠르게 벌리고 있다.
반면 백화점 3사의 매출은 2023년 8조2979억 원에서 2025년 8조4382억 원으로 1400억 원 수준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올다무가 약 3조5천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추가로 늘린 것과 비교하면, 절대 증가액 기준으로도 25배 이상 격차가 벌어진 셈이다.
수익성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2025년 기준 올다무의 합산 영업이익은 1조3157억 원으로 백화점 3사의 영업이익(1조3021억 원)을 136억원 차이로 앞질렀다. 매출 확대 속도까지 감안하면 단순한 외형 성장을 넘어 수익 구조 측면에서도 역전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격차는 단순한 업황 차이가 아닌 ‘소비 기준의 변화’로 해석된다. 백화점이 여전히 명품과 프리미엄 경험 중심 전략을 유지하며 ‘더 좋은 것’을 제안하는 구조라며, 올다무는 실용성과 선택 효율을 앞세워 ‘충분한 것’을 빠르게 고르게 하는 구조에 가깝다. 요노 소비와의 궁합에서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이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만 사도 충분한 소비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CJ올리브영은 수많은 브랜드를 나열하기보다 검증된 제품 중심의 큐레이션을 강화해 소비자의 선택 부담을 줄였다. 다이소는 균일가 정책으로 가격 판단 과정을 단순화하며, ‘적정 가격의 충분한 품질’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무신사는 과시형 명품 대신 개인 취향과 실용성을 반영한 패션 소비를 전면에 내세우며 젊은 층을 끌어들였다.
이러한 구조는 소비자의 구매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처럼 여러 상품을 비교하고 충동적으로 구매하기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한두 개 제품에 집중하는 소비가 늘어난 것이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상품을 보유하느냐보다, 얼마나 빠르게 ‘괜찮은 선택’을 제안하느냐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외국인 소비에서도 같은 흐름이 감지된다. 올리브영은 지난해 외국인 매출 비중이 25%를 넘어섰고, 다이소와 무신사 역시 주요 매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크게 늘었다. 이는 단순한 K콘텐츠 인기뿐 아니라, 짧은 체류 기간 동안 실패 없는 소비를 원하는 관광객들에게 ‘검증된 선택지를 압축 제공하는 구조’가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올다무의 확장 전략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올리브영은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며 글로벌 뷰티 플랫폼으로의 도약을 추진하고 있고, 무신사는 대형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패션·뷰티·식음료를 결합한 복합 공간을 선보이고 있다. 다이소는 전국 1600여 개 매장과 물류망을 기반으로 균일가 전략을 더욱 강화할 계획을 세웠다.
결국 유통 시장의 판을 바꾸고 있는 것은 가격이 아니라 기준이다. 욜로가 욕망과 경험을 자극하는 소비였다면, 요노는 필요와 판단에 기반한 소비다. 앞으로 유통의 경쟁력은 더 이상 ‘얼마나 많이 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적게 팔면서도 소비자 만족을 극대화하느냐’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