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전소 및 교량 대량 폭격 위협에 맞서, 이란 사람들이 폭격 위협 시설 앞에서 인간 사슬을 짰다.
이들의 손에는 무기 대신 오직 이란 국기만이 들려 있었다.
이란의 유명 작곡가 알리 감사리가 7일(현지시각) 이란의 수도 테헤란 인근 다마반드 발전소 앞에서 연좌 시위를 벌이며 전통 악기 타르로 '나의 조국'이라는 곡을 연주하고 있다. ⓒIran Screenshot 엑스(X) 계정
테헤란 인근 다마반드 발전소 앞에서 이란의 유명 작곡가 알리 감사리는 전통 악기 타르를 연주하며 연좌 시위에 나섰다. 긴장감이 감도는 발전소 앞에서 '나의 조국'이라는 노래가 울려퍼졌다.
IRIB TV를 비롯한 이란 국영 매체는 7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 인근 최대 발전소와 북서부 타브리즈 등 주요 전력 시설 앞에 시민들이 모여든 모습을 보도했다. 이들은 국기를 흔들고 저항의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남서부 데즈풀에서는 무려 17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대 다리 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간 띠를 형성했다.
이란 북서부에 위치한 타브리즈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을 가장 많이 받은 도시 중 하나인데, 이곳 주민들이 7일(현지시각) 발전소 주변에 인간 사슬을 만들어 저항하고 있다. ⓒIRIB (Islamic Republic of Iran Broadcasting) 엑스(X) 계정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같은 날 자신의 엑스(X, 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1400만 명의 국민이 자발적으로 항전 참여해 서명했다"며 "이는 조국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었음을 선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정부와 군은 바시즈민병대의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미국·이스라엘의 침략에 맞서 국가를 수호하겠다는 서명을 받고 있다.
알리레자 라히미 체육·청소년부 장관 역시 이날 국영 TV 영상 메시지를 통해 "모든 청년과 운동선수, 예술가, 학생, 교수들이 동참해달라"며 "정치적 견해나 취향과 상관없이 우리의 국가 자산이자 이란 청년들의 미래인 발전소 주변으로 화요일 오후 2시에 모여달라"고 요청했다.
영국 가디언지는 "이란은 과거에도 서구와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핵 시설 주변에 '인간 방패'를 형성해 시위를 벌인 전례가 있다"고 전했다. 이는 청년들의 자발적인 구국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무기 없이 온몸으로 맞서는 상징적 비폭력 저항이라 국제여론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청년들을 방패로 앞세운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란 청년들의 밝은 미래를 위한 인간 사슬'
체육·청소년부 장관은 이번 인간 사슬을 두고 '이란 청년들의 밝은 미래를 위한 인간 사슬(Human Chain for a Bright Future for Iranian Youth)'이라 불렀다.
이들이 스스로 인간 방패를 자처한 것은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각) '이란의 모든 발전소와 교량을 초토화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저 아래 이란 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흔인 '불타버린 세대(Nasl-e Sukhteh)'의 기억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80년부터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1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이란 역사상 최악의 참극이었다.
당시 13세에서 25세 사이의 이란 청년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는 전쟁 속에서 미래와 꿈을 송두리째 잃었다. '인생의 모든 가능성이 타버리고 재만 남았다'는 이 명칭은 당시 청년들이 감내해야 했던 시대적 절망을 상징한다. 오늘날 발전소 앞에 모인 청년들은 40년 전 부모 세대가 겪었던 절망의 기시감을 느끼고 있다. 평범한 삶이 전쟁의 공포 아래 놓였다는 본질은 같다.
2022년엔 '자유'를 위해, 2026년엔 '생존'을 위해
2022년 당시 이란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대. ⓒAP/연합뉴스
이란 사람들에게 인간사슬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2022년 9월, 히잡 착용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끌려간 뒤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이 발생했다. 이란 당국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소식이 전해지자 테헤란을 비롯한 전국에서 분노가 폭발했다.
당시 반정부 시위는 이란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주도했으며, 대학생과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이 연대하며 확산됐다. 시위의 슬로건은 '여성, 삶, 자유(Zan, Zendegi, Azadi)'였다. 여성들은 거리에서 히잡을 태우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시위를 벌였고, 대학생과 시민들은 팔짱을 끼고 인간사슬을 형성하며 군경의 진압에 맞서 비폭력으로 저항했다.
과거 이란 시민들이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 외치며 내부 억압에 맞섰다. 오늘날에도 외부 전쟁 위협 앞에서 시민들은 팔짱을 끼고 연대하며 비폭력적으로 생존권을 지키고 있다. 2022년 거리에서 자유를 외쳤던 이들은 이제 국가의 기반 시설인 발전소를 지키며, '우리 세대를 다시는 불태울 수 없다'는 절박한 외침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부 억압과 외부 전쟁 위협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인간사슬을 만든 이란 시민들의 행동은 단순한 방어를 넘어선다. 그것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삶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평화의 외침이자, 생존을 위한 마지막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