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란이 파키스탄 등 중재국의 '2단계 종전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석기시대'를 운운하며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지만,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하고 버티면 이긴다는 전략을 분명히 한 셈이다. 결국 이란 전쟁은 이란의 항복, 또는 미국의 일방적 철수의 양자택일만 남겨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3월25일 미국 워싱턴D.C.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전국공화당 하원의원위원회(NRCC) 연례 모금 만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7일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와 로이터 등에 따르면 이란은 호르무즈 재개방을 조건으로 하는 임시휴전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전쟁종식을 위한 이란의 입장을 담은 답변서를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익명을 요구한 이란 고위관리는 로이터에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는 대가로 하는 임시휴전은 수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런 2단계 중재안 거부는 글로벌 해상 원유수송량의 약 30%, 컨테이너 기준 글로벌 물동량의 3.5%를 담당하고 있는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섣불리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뒤 이 해협을 통과하는 물동량은 평시 대비 80~86%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전쟁 종전을 둘러싼 양국의 이러한 대립을 전쟁의 현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당초 이란이 보유한 핵농축 물질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이란 전쟁을 시작했으나 이제 관심은 오직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맞춰져 있다.
이란은 이번에 미국에 전달한 답변서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서는 오만과 함께 선박당 약 200만 달러(약 30억 원)의 통행료를 부과하는 조건을 단 것으로 알려졌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큰 경제적 이득을 볼 뿐 아니라 향후 벌어질 수 있는 '2차 이란 전쟁'을 예방할 교두보를 구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분쟁예방기구인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 이란 프로젝트 총괄부장은 3일 로이터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란이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다가 오히려 이란에게 대량혼란무기를 안겨줬다"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장악을 통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좌우하는 능력이 핵무기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군사적으로 위협해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풀려 하고 있다.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위협이든 실제 공격이든 이란의 항복을 이끌어 냄으로써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6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이란이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을 허용하는 형태로 전쟁을 끝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석유를 비롯한 모든 물자의 자유로운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보장하는 것이 수용할 수 있는 합의안이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란에 미국 동부시간 7일 오후 8시(한국시간 8일 오전 9시)까지 협상시간을 주기로 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면서 "그 시간이 지나면 이란에는 더 이상 온전한 다리도 발전소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며 "말 그대로 석기시대로 되돌아갈 것이다"고 위협했다.
영국 정책제안기구 채텀하우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딜레마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지 않더라도 해안발사 미사일과 공격용 드론만으로 선박 보험료와 위험 프리미엄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려 실질적 봉쇄 효과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설정한 시한(미국 동부시간 7일 오후 8시) 뒤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먼저 본인의 말처럼 이란 핵심 인프라를 대규모로 타격하는 방안이다. 이에 이란은 항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의 인프라를 파괴함으로 반격할 수도 있다. 이란의 반격이 효과를 본다면 중동 국가들의 담수화 설비 등이 파괴되면서 석유 생산 능력이 떨어지고 국제유가는 급등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악의 악몽이 현실이 되는 셈이다.
다른 하나는 전쟁 승리를 선언하고 일방적으로 철군하는 방법이다. 통행료 수준이야 여차저차해서 달라질 수 있겠지만 결국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계속 지키게 된다. 미국은 이번 전쟁으로 1만 곳이 넘는 군사 시설물을 파괴함으로써 큰 군사적 성과를 거뒀지만 이란은 호르무즈 통행을 무기화하는 데 성공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로써 전쟁은 이란의 승리로 끝났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요컨대 이란의 항복이 아니라면 양쪽 모두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최악의 결과가 되는 셈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언사가 험악해지는 것도 이때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