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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1일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 BTS 컴백 공연이 열렸다. 넷플릭스의 생중계 화면 속 광화문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팬들로 가득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광장 주변을 메운 사람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보랏빛 응원봉을 흔들며 서울에서 경험한 감동을 되새긴 사람들.

나는 그걸 보면서 직업병처럼 이런 생각을 했다.

[호텔리어 조정욱의 컨시어지 노트] 광화문을 보라색으로 물들인 BTS 컴백 공연이 끝나고, 아미들은 어디로 향했을까
광화문을 가득 메운 전 세계에서 모여든 '방탄소년단'(BTS)의 팬들, 화려한 축제가 끝난 뒤 몸을 뉘일 호텔은 그들에게 또 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저 사람들은 오늘 어디서 묵을까?"

어디서 ‘자는가'가 아니라, 어디서 ‘묵는가'다. 이 두 단어의 차이가 꽤 크다.

긴 시간 호텔은 '잠자는 곳'으로 기능했다. 낮에는 유적지를 둘러보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저녁 어스름에 돌아와 잠을 자는 곳. 호텔은 여행에서 '수면'을 해결하는 장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도 그런 식의 여행은 물론 많다.

유재석의 여행 예능 <풍향고>가 요즘 화제다. '노 어플, 노 예약'이라는 콘셉트답게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며 발품 팔아 호텔을 찾고, 어렵사리 방을 구하는 데 성공하면 잠을 청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그 여행에서 호텔은 수면을 해결하는 장소로 주로 등장한다.

내게는 호텔이 숙소 이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 경험이 하나 있다. 2000년대 초반, 업무 차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일행은 뉴욕에서 손꼽히는 호텔을 예약했다. 당시 1박에 600달러쯤 했으니 지금이라면 2,000달러는 내야 할 곳이었다. 내심 무척 기대했다. 그런데 오후 내내 이어진 거래선 방문과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술자리를 모두 소화하고 나니 어느덧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호텔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일정은 오전 6시 조식을 시작으로 곧바로 체크아웃을 하면 공항으로 직행해 귀국하게 되어 있었다. 정확히 단 4시간 동안만 호텔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새벽 2시에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말 그대로 '돈이 아까워서' 방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고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겼다. 급기야 프론트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객실 TV와 인터넷 연결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새벽 2시에 말이다. 그럼에도 직원은 즉시 객실로 달려와 아주 친절하게 모든 요청을 해결해주는 것을 보며 '역시 좋은 호텔은 다르구나.' 싶었다.

하지만 고작 4시간 뒤, 객실을 제대로 누려볼 시간도 없이 그 유명한 호텔에서 잠만 자고 빠져나왔다. 두고두고 아쉬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아쉬움 덕분에 나의 여행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어느 도시를 가든 가능한 좋은 호텔을 고르되,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보았던 도시를 떠올려보면 거의 대부분 마을 중앙에 광장이 있었다. 그곳은 늘 사람들로 가득했고 서로 어울려 대화하고 사진도 찍으며 저마다의 경험을 만들었다. 호텔도 그렇지 않을까. 쉬면서 새로운 관계도 맺고 다음 발걸음을 위한 베이스캠프가 되는 거다.

올해 초 트립닷컴이 발표한 글로벌 여행 트렌드 조사에서도 사람들은 여행지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축제를 보기 위해, 고유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그리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갖고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을 온전히 즐기기 위한 거점, 낯선 도시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출발점이자 온종일 걷고 보고 먹고 난 뒤 돌아와 안도감을 느끼는 귀환점으로서 호텔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3월 21일, 광화문에서 BTS 공연을 직관한 후 쉽게 가라앉지 않는 흥분을 안고 늦은 시간에 호텔로 돌아간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날의 주인공은 호텔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하루를 온전한 경험으로 완성해준 건 공연의 감동을 안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의 서울을 다시 기대했을 거다. 콘서트든, 축제든, 아무 이유 없는 여행이든 마찬가지다. 여행에서 호텔은 목적지가 아니다. 당신의 모든 경험을 품어주는 베이스캠프가 된다.

글쓴이 조정욱은 앰배서더서울풀만 대표이사다. 25년차 호텔리어로, 삼성생명에서 해외 투자 기획 업무를 거쳐 신라호텔에서 서울·제주 총지배인과 호텔사업부장을 역임했다. 2022년, 한국 최초의 민영 호텔 '금수장'에 뿌리를 둔 앰배서더서울풀만의 전관 리모델링 재개관과 함께 대표이사로 취임해 중식당 '호빈'의 미쉐린 가이드 2년 연속 수록 등 주목할 성과를 이끌어냈다.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호텔에서 일해온 사람의 시선으로, 호텔을 조금 더 잘 즐기는 법을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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