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착적으로 드러내온 황금 사랑은 이제 부와 성공의 상징을 넘어 사치와 허영, 군주적 욕망을 드러내는 코드로 읽히고 있다. 번쩍이는 금빛을 향한 그의 집착은 대중과 예술가들의 손에서 황금 변기와 왕관 같은 풍자로 되돌아오며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왕에게 어울리는 왕좌(A Throne Fit for a King)'라는 제목의 대형 황금 변기 조형물이 2026년 3월3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내 내셔널 몰의 링컨 기념관 인근에 전시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월 말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 앞 내셔널 몰에는 약 3미터 높이의 ‘황금 변기 왕좌’ 조형물이 등장했다. 예술 단체 ‘시크릿 핸드셰이크(Secret Handshake)’가 제작한 이 작품의 제목은 '왕에게 어울리는 왕좌(A Throne Fit for a King)'이다. 대리석처럼 보이는 자재와 황금색으로 장식된 왕좌엔 황금변기가 올라가 있다.
누구나 여기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단숨에 셀카 명소로 떠올랐다. 누구나 앉을 수 있는 변기가 특정 인물에게는 왕좌가 되는 역설적인 상황인 셈이다. 이 작품은 왕처럼 군림하려 하지만 결국 모두가 변기에 앉는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트럼프 대통령을 저격하며 "전례 없는 분열과 격화하는 분쟁, 경제적 혼란 시기에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했다"며 "그건 백악관 링컨룸 화장실 리모델링이었다"고 설명했다.
화장실도 금칠하는 트럼프
2025년 10월31일 소셜 미디어로 공개된 미국 백악관 '링컨 욕실' 내부 모습. ⓒDonald Trump Truth Social
2025년 10월31일 소셜 미디어로 공개된 미국 백악관 '링컨 욕실' 내부 모습. ⓒDonald Trump Truth Social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31일 자신의 SNS에 백악관 링컨 침실 화장실 리모델링 소식을 전하며 화장실 내부 사진 24장을 공개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며 정부 셧다운이 발생했고, 그 여파로 저소득층 식량 지원 프로그램(SNAP) 지급도 늦어졌다. 이런 와중에 화장실 공사를 벌인 것을 두고 민생보다 화장실을 금빛으로 치장하는 데 몰두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탈리아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아메리카' ⓒ구겐하임 재단 홈페이지
트럼프 대통령의 금빛 욕심과 화장실 리모델링은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황금 변기 '아메리카'를 떠올리게 한다. 18K 순금으로 제작된 이 변기는 실제 사용이 가능하며, 구겐하임 미술관 화장실에 설치돼 관람객이 직접 이용할 수 있었다. 누구나 부자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결국 배설을 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걸 반 고흐 작품을 빌려달라고 요청했을 때, 구겐하임 미술관 측이 대신 이 황금 변기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물론 트럼프 측은 이를 거절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색 취향은 사업가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뉴욕에 위치한 트럼프 타워 펜트하우스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24K 금으로 장식돼 있으며, 가구와 접시, 문고리까지 금도금으로 꾸며졌다. 이는 베르사유 궁전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전용기 ‘트럼프 포스 원’ 역시 안전벨트 버클부터 세면대 수전까지 24K 금으로 도금돼 있다고 알려졌다. 특히 대통령 취임 직후 집무실 커튼을 금색으로 교체했고, 2기 행정부에서는 집무실 액자와 TV 리모컨까지 금박을 입혔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트럼프 기념관 조감도 영상에서 황금빛 트럼프 동상이 등장했다 ⓒDonald Trump Truth Social
트럼프 대통령의 금빛 취향은 이제 개인 공간을 넘어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자신의 SNS를 통해 마이애미에 건설 예정인 47층 규모 대통령 기념관 조감도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형상화한 대형 금빛 동상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강당으로 보이는 공간 중앙에 자리한 이 동상은 오른팔을 치켜든 채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빛 취향은 이제 개인 공간을 넘어 외교와 대중 문화 영역까지 확장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신라 금관을 본뜬 금색 왕관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역시 금박 골프공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트럼프의 부 과시는 코미디계에서도 풍자의 대상이 됐다. 코미디언 존 멀레이니는 2012년 스탠드업 공연 '뉴 인 타운'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노숙자가 상상하는 부자의 모습 그 자체"라고 꼬집으며, 모든 것을 금으로 치장하는 행위가 오히려 천박함을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유럽에서는 금이 왕권과 제국을 상징해온 만큼, 트럼프의 취향은 민주주의 지도자라기보다 군주적 욕망으로 읽힌다. 실제로 지난 2월 독일 마인츠 장미 월요일 퍼레이드에서는 황금 왕관을 쓴 트럼프가 자유의 여신상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위협하는 조형물이 등장해 표현의 자유 훼손을 풍자했다.
또한, 쿠바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에델 로드리게스는 2016년 8월 22일자 타임지 표지 작업에서 트럼프의 눈, 코, 입을 지운 채 얼굴이 녹아내리는 이미지와 번쩍이는 금발만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과장된 권력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비인간적 리더십을 풍자했다.
도널드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9일 자신의 SNS에 20초 분량의 AI 영상을 올렸다. ⓒDonald Trump Truth Social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풍자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이미지 브랜딩에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왕관을 쓴 채 전투기에서 시위대를 향해 오물을 투척하는 20초 분량의 AI 영상을 게시하며, 미국 전역에서 확산된 '노 킹스(No Kings, 왕은 없다)' 시위를 조롱했다. 이에 맞서 시위대는 영상 속 오물 대신 평화를 상징하는 꽃을 던지는 합성 영상을 공유하며 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