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킬로미터 거리에 용산 전쟁기념관이 있는데도 서울시는 '받들어총' 조형물 설치를 4월 완공한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업이 기어코 끝을 보는 셈이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왼쪽), 오세훈 서울시장 ⓒ연합뉴스
서울시는 이른바 '감사의 정원' 조성 사업에 석재를 기증한 9개 국가 외교단을 초청한 기자간담회에서 광화문 광장에 '받들어총' 조형물을 오는 4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지상에는 의장대가 '받들어총'을 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높이 약 7m짜기 석재 조형물 23개를 세우고, 지하에는 참전국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미디어월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조형물은 인도산 스틸 그레이 석재로 제작돼 그리스,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등 7개 국가가 기증한 석재를 모듈처럼 끼워 넣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이처럼 단일 조형물이 아닌 23개의 대형 구조물이 들어서는 만큼 공간을 장악하는 수준의 규모라는 비판도 나온다.
'받들어총!'은 총을 몸 앞에 세워 들고 예를 표하는 군의 대표적 경례 동작이다. 명령에 따라 취하는 군사적 자세인 만큼, 이를 기념 조형물로 삼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형상이 국가 권력에 대한 복종의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서울시는 "6.25 전쟁 당시 희생한 우리 국군과 유엔 참전 용사에 대한 최고 예우를 나타내는 집총경례 형태를 모티브로 한 것"이라며 "전쟁의 산물인 것처럼 폄훼하는 것은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에 대해 적절한 예우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논쟁은 쉽게 식지 않는다. "경복궁 하늘에 총 쏘는 거냐", "진심 흉물", "시장만 바뀌면 당장 철거하지"와 같은 날선 반응이 이어진다. 또한 총을 배제한 인물상 등 다른 대안도 있었는데 굳이 군사적 상징을 택한 이유를 묻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2025년 11월18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인근에서 '감사의 정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5년 11월18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인근에서 '감사의 정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광화문광장 중심에는 이순신 장군상과 세종대왕상이라는 거대한 상징물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또 다른 대형 조형물이 더해지면 탁 트인 광장의 개방감은 줄어들고 마당과 같은 공간이 마치 조형물 전시장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무겁고 고정된 구조물이 늘어날수록 축제·공연·집회 등 공간 활용이 제약을 받을 수 있어 광장이 지닌 시민에게 열린 공간이라는 정체성과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서울시는 "2009년 광화문광장 개장 이후 국가상징공간 조성에 대해 10여 년간 고민한 끝에 시작한 사업"이라며 "광화문광장은 연간 방문자 수 2700만 명의 내외국인이 방문하는 공간이다. 참전국을 향한 감사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전 세계와의 연대를 다지고 방문객들에게 큰 감동을 전하기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와 같은 논란은 사업 추진 시기와 맞물리며 정치적 해석으로 번지고 있다. 완공 시점이 6.3 지방선거를 불과 한두 달 앞둔 시기라는 점에서 선거용 사업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조형물은 한 번 세워지면 수십 년간 자리를 지키며 이를 추진한 주체의 정치적 메시지를 고스란히 남기는 장치가 된다. 게다가 조형물은 예산 대비 결과가 한 눈에 바로 보인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쉬운 수단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조형물은 '돌로 만든 정치'라고 불리며 특정 역사관이나 안보관을 강조하는 상징적 메시지로 기능하기도 한다.
6·3 지방선거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광역단체장 후보 면접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3.22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의 도시 구상이 상징 조형물을 통한 메시지 연출에 편중돼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오 시장은 2024년 국민 자긍심을 높이는 상징 공간이 필요하다며 광화문에 100m 규모 태극기 구조물과 '꺼지지 않는 불꽃'을 2026년까지 설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는 계획을 일부 수정했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받들어총' 조형물로 방향을 전환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뒤따른다.
광장이나 거리 같은 도심 속 공공 공간에 설치되는 조형물은 특정 공동체가 무엇을 기억하려 하는지를 드러낸다. 동시에 어떤 기억을 강조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정치적 장치로도 읽힌다. 조형물은 그 자리에 고정돼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기리는 방식이 반드시 광장 위의 조형물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제기된다. 오히려 비워진 광장이 더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치권이 광장을 상징의 공간으로 만들려는 흐름과 시민들이 열린 공간으로 남기길 바라는 기대가 엇갈리는 지점이다. 광화문은 청와대, 경복궁, 정부청사가 맞닿은 상징적 축으로 단순한 설치 장소를 넘어 그 자체로 이미 강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가보훈부가 지정한 국가 수호 관련 현충시설이 약 1300여 개에 이른다. 광화문에서 불과 4~5km 거리에 용산 전쟁기념관이 있지만 '왜 굳이 광화문 광장에?'라는 질문이 반복되는 이유다.
'감사의 정원'에 들어가는 총 사업비는 730억 원 규모다. 건립 이후에도 유지·보수 비용이 꾸준히 들어간다. 시민들이 체감하는 편익보다 상징성에 무게가 실린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해질 경우 예산 낭비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이번 '받들어총' 논쟁은 광화문 광장을 어떤 공간으로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