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이어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의 가능성을 내비쳐 '대서양 동맹'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NATO 회원국들이 이란 전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요청을 거부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NATO를 떠날 경우 유럽의 안보 지형에는 중대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깃발과 미국 성조기가 찢어진 모습. AI 이미지
31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이 이란전쟁을 어떤 형식으로든 끝맺은 뒤 NATO와 협력관계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30일(현지시각) 알자지라와 나눈 인터뷰에서 스페인이 이란 전쟁과 관련해 미군 항공기의 영공진입을 차단한 것을 비판하면서 NATO 탈퇴 가능성을 내비쳤다.
루비오 장관은 "NATO 회원국인 스페인 좌파 지도자들이 자국의 영공을 차단한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며 "만약 NATO가 유럽이 공격받을 때 미국의 지원만을 바라고, 정작 미국이 필요로 할 때 기지 사용권을 비롯한 지원을 거부한다면 좋은 체제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은 이란전쟁이 끝난 뒤 NATO와 관련된 모든 것을 재검토(reexamine)해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그동안 미국이 NATO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는데 이번에는 변화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NATO가 미국에 협조하지 않은 것을 꾸준히 비판해온 것에 루비오 국무장관이 발을 맞춘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주최한 행사(FII)에서도 "NATO가 미국을 도와주지 않은 것은 엄청난 실수"라며 "NATO가 미국을 위해 나서지 않는데 우리가 왜 그들을 위해 나서야 하나"고 말했다.
루비오 국무장관까지 힘을 더하면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NATO 탈퇴 가능성은 한층 높아지는 모양새다. 글로벌 전문가들은 미국이 NATO를 탈퇴할 경우 △유럽 집단방위체제 균열 △미국 공백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활용 가능성 △핵 도미노 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유럽 집단방위체계 균열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탈퇴하면 러시아를 상대로 한 유럽의 안보에 균열이 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AI 이미지.
미국이 NATO를 탈퇴할 경우 유럽은 단기적으로 미국의 안보보장을 대체할 능력이 없어 유럽의 집단방위체계에 균열이 갈 수 있다. NATO의 집단방위 조항이 그동안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미국이 빠지는 순간 안보지형에 큰 변화가 생긴다.
특히 폴란드와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처럼 러시아와 직접 맞닿아 있는 동유럽 국가들이 사실상 자력구제 상태에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아제르바이잔 매체 뉴스에이지(News.az)는 "미국의 NATO 탈퇴는 유럽이 미국의 힘을 축으로하는 일관된 안보체제에서 지역블록과 임시연합, 불안정한 세력 정렬이 뒤섞인 체제로 이동하게 됨을 의미한다"며 "분쟁은 예측하기 더 어려워지고 확전되기는 더욱 쉬워지는 불안정한 체제가 지속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유럽연합 산하 공공 싱크탱크 유럽연합안보연구소(EUISS)는 "미국이 NATO에서 탈퇴한다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버금갈 만큼 유럽 안보에는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다"며 "그동안 역내 불안을 억제하던 집단방위체제의 구조전체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 공백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활용 가능성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I 생성 이미지.
미국이 NATO를 떠나게 될 경우 유럽국가들이 러시아의 직접적 위협 아래 놓인다.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뒤 서방을 향한 군사적 압력을 본격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안보전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는 올해 초 내놓은 보고서 '2026년 10대 글로벌 리스크 : 더욱 불안정해진 세계'에서 "러시아가 서방의 분열이라는 장기 목표를 달성하고 NATO를 사실상 무력화(emasculate)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각을 세우기보다 경제적 협상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NATO에 대한 직접적 공격도 불안 요소이지만, NATO에 속하지 않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직접적 군사 행동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EUISS는 "미국의 NATO 탈퇴가 현실화 될 경우 안보전문가들은 러시아 주변의 NATO 회원국이 아닌 나라들에 대한 러시아의 새로운 군사행동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주변국이 위협에 포섭되거나 기회주의적 확전에 굴복할 시나리오는 매우 현실적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핵 억지력 공백에 따른 핵 도미노 위험
핵무기가 투하돼 버섯구름이 만들어진 모습. AI 이미지.
미국이 NATO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면 유럽에서 핵무장 논의가 급속도로 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유럽은 수십 년간 미국의 '핵우산(미국의 핵무기로 동맹국을 방어한다는 안보체제)'에 의존해왔기 때문에 이런 방어보장체제가 사라지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각 나라별로 핵개발에 탄력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외교정책협회(DGAP)는 "미국이 NATO에서 탈퇴하는 것은 미국 자신에게도 큰 손실을 야기하지만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프랑스와 영국, 비핵보유국인 유럽 국가들이 핵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독일 싱크탱크 국제안보연구소(SWP)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유럽방위에서 완전히 이탈할 경우, 러시아에 대한 불안감으로 유럽국가들이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기도 한다.
SWP는 "비록 프랑스가 핵보유국이긴 하지만 미국처럼 다른 나라를 보호할 정도의 핵억제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보증할 수 없다"며 "결국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 국가들은 독자적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방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