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이른바 ‘전세계’라는 활동명으로 마약을 유통해 온 박왕열씨가 국내로 임시 인도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직접 인도를 요청한 지 22일 만이다.
필리핀에서 교민 3명 살해, 탈옥, 국내 마약 유통 등을 일삼으며 '마약왕'으로 불리던 박왕열씨가 2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되고 있다(왼쪽), 2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통화 중인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25일 정부 ‘초국가범죄 특별대응 태스크포스(TF)’는 이날 오전 필리핀 당국으로부터 박왕열의 신병을 넘겨받았다고 밝혔다.
박왕열은 2022년 4월 필리핀 법원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한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단기 52년에서 장기 60년에 이르는 징역형을 선고받고 현지에서 복역중이었다. 그는 마약과 불법 도박장 운영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려 큰 인기를 끈 디즈니+ 드라마 ‘카지노’(최민식 주연)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수감 중에도 한국으로 마약을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텔레그램을 통해 한 달에 약 60kg, 시가 300억 원 규모에 달하는 엑스터시와 케타민, 합성 대마 등 동남아산 마약류를 국내에 공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물량은 국내 최대 규모 공급망으로 지목된 ‘바티칸 킹덤’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가 투약한 마약 역시 이른바 박왕열의 유통망을 거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법무부는 박왕열의 신병 인도를 수차례 요청했으나, 필리핀 정부가 송환을 보류하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 사이 박왕열은 국내 취재진 인터뷰에서 “내가 마약을 팔았다는 증거가 있느냐. 내가 입을 열면 한국 검사들 중 옷 벗을 사람 많다”며 국내 수사기관을 조롱하기도 했다.
25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북부경찰청에서 '마약왕'으로 불리던 박왕열이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상황은 반전을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한-필리핀 정상회담에서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에게 박왕열의 임시 인도를 강하게 요청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튿날인 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서도 “한국인 3명을 살해하고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에서도 텔레그램으로 한국에 마약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며 박왕열을 직접 언급했다.
정부는 이번 임시 인도가 대통령의 강한 의지 아래 ‘초국가범죄 특별대응 TF’를 중심으로 법무부, 외교부,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 등 관계 부처가 긴밀히 협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박왕열을 즉시 수사기관에 인계해 공범과의 공모를 통한 마약 밀수·유통·판매 혐의 등을 철저히 수사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아울러 그가 가담한 마약 유통 조직의 실체를 규명하고, 범죄수익 역시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기로 했다.
이번 송환 조치는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작은 문제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려는 이재명 대통령식 국정 운영의 한 단면이라는 풀이도 나왔다. “빈틈없는 사회 안전망 구축”, “기본사회·돌봄 국가 책임제 도입” 등을 앞세워 작은 개별 정책까지 촘촘히 챙겨가는 국정운영 방식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앞서 유시민 작가는 여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에 대해 “일시적 이슈로 급등한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정책과 사건을 해결하며 서서히 쌓아온 단단한 지지율”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이전 윤석열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고강도 수사를 이어갔지만, 마약 사범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법무부가 이미 박왕열의 신병 인도를 요청했으나, 필리핀 측은 “현지 사법 절차가 마무리돼야 송환이 가능하다”며 이를 보류했다. 이후에도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는 있었지만, 정부 차원의 종합적 대응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