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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는 월급쟁이의 꽃이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봉급쟁이가 꿀 수 있는 최대한도의 꿈이다. 회사라는 정글 속에서 감히 대놓고 꿈꾸진 못해도 '대표이사 되기' 같은 과외가 있다면 너도나도 들을 것이다.

올해 3월 조정열 전 에이블씨엔씨 대표이사가 낸 <전략보다 '지금, 여기'였다>는 미래의 대표이사를 길러낼 교재로 쓰일 수 있는 책이다. 제목은 조 전 대표의 평소 입말을 그대로 살렸다. 그가 책에서 남의 돈으로 벌어먹는 인생의 쓰임과 설움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근 8년을 근무한 글로벌 소비재 회사를 떠나던 날, 배웅을 받으며 회사 문을 닫고 짐을 챙긴 박스를 가슴에 안고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다. 차를 타기 전 주저앉아 혼자 꺼이꺼이 울었다." 대표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도 든다. 

[허프 인터뷰] '전략보다 '지금, 여기'였다' 출간한 전 CEO 조정열 32년 월급쟁이 인생 남이 봐도 되는 일기장으로 엮었다
조정열 전 에이블씨엔씨 대표를 13일 서울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허프포스트코리아 

13일 서울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조 전 대표를 만났다. 어깨 길이 갈색 머리, 검은 정장, 운동화 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가방에서 인터뷰를 위해 준비해온 검은 구두를 꺼내더니, 자기 책이 "남이 봐도 되는 일기장"이라 했다. 자리에 앉아 샤프로 수첩에 쓴 일기장을 직접 펼쳐 보이기도 했다.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경험을 누구한테 좀 나눠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쓰다 보니 인생이 정리되는 효과도 덤으로 있었다. 돌아보니 후회되는 순간도 참 많았는데, 그것도 그대로 쓰고 싶었다."

조 전 대표는 2022년 3월까지 에이블씨엔씨 부회장을 맡은 뒤 4년간 경영자로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케이옥션, 갤러리현대, 쏘카, 한독 대표를 거쳐 에이블씨엔씨 대표를 맡았다가 사임한 뒤 한동안 경영을 맡지 않았다. 이후 한동안 돌봄 노동으로 일상을 채웠다. 아버지의 치매 발병과 어머니의 허리 부상, 반려견의 노화, 직장인의 친구 번아웃이 함께 찾아왔다.

"32년간 미친 사람처럼 일하고 그 중 11년을 대표로 지내다 보니 1년간 번아웃이 왔다. 그때 인도네시아 발리의 길리 섬에 여행을 갔다. 책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도 그곳에서 책의 목차가 저절로 떠올랐다. 2024년 12월31일에 원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쓴 것을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지난해부터 링크드인에 한 페이지씩 올렸더니 생각 외로 반응이 좋았고 출판사와 작업도 진행할 수 있었다."

그가 구성한 52개의 목차는 생생한 깨달음으로 가득하다. '아수라장 같은 내면을 정돈하고 지키는 법', '내가 키운 사람들이 나보다 잘될 때', '보스랑 안 맞을 때는 회사를 떠나는 게 낫다', '날 손절한 사람, 내가 손절한 사람', '거지 같은 결정도 좋은 결정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나다’, '회사 나가면 그냥 아저씨, 아줌마다' 등. 일부 글의 원본은 링크드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링크드인에서 가장 좋은 반응을 얻었던 글 가운데 하나는 '그래, 나 배신자다'로, 잦은 이직에 대한 소회를 적은 것이다. "이직에 있어서는 한번 해보고 싶다는 감정에 충실했다. 이 회사, 저 회사 사이에서 간을 보면서 연봉을 부풀리거나, 승진을 위해 이직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예술 산업에 진입했을 때는 연봉이 대폭 삭감됐고, 스타트업에서도 다른 산업과 비교했을 때 연봉이 낮았다. 하지만 다른 리워드가 있었고 또한 보이지 않는 다른 요소가 더 중요했다."

-'프로 이직러'로 살아온 조 전 대표는 서로 다른 산업군만 6개를 경험했다. 전혀 다른 분야로 이직할 때 두려움은 없었을까.

"에라 모르겠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한다. 물론 똥이라고 느끼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땐 '아, 중간이라도 가게 만들어야겠다'며 더 치열하게 일한다. 처음 6개월은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이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조금 수월해진다." 

-낯선 분야의 산업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파악할 수 있었을까.
 
"'사람'을 통해서 배웠다. 자료를 봐도 도저히 모르겠으면 예전 직장 동료나 전문가를 찾아 전화를 건다. 그들에게 30분이라도 강의를 듣는다. 주변 신입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창피해하지 말고, 묻고 따지지 말고 질문하라'는 거다. 사람들은 의외로 무장해제하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관대하다. 물어보는 것은 무조건 플러스이지 마이너스가 없다."

-당신이 대표이사라서 사람들이 가르쳐줬던 것은 아닐까?

"그건 아니다. 대표이사가 아닐 때도 그렇게 배웠으니까. 필요한 것을 부탁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부탁할 수 있으려면 내가 평소에 베푸는 선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해야 하고 친절해야 된다."

-하지만 대표이사는 착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가맹점주의 반발이나 노조와의 갈등을 해결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한 경험이 있을 텐데.

"대표이사가 갈등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한 회사에서는 유통망을 온라인과 해외로 바꿔야 회사가 산다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오프라인을 줄이는 결정을 했다. 오프라인 가맹점주 입장에서는 그런 결정을 한 나를 죽이고 싶었을 거다. 미팅에 가면 뭇매를 맞을 걸 알면서도 가야만 했다. 구조조정을 할 때는 회사에서 퇴직위로금도 나오지 않아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역지사지로 공감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부분 기업에 오너가 있는데도 대표이사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뭘까?

"오너 기업이 외부에서 전문 경영인을 부를 때는 보통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오너가 직접 하기 힘든 구조조정을 해야 할 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처럼 오너가 모르는 전문 영역을 다룰 사람이 필요할 때, 그리고 회사를 처음부터 다시 뒤집어야 해서 엄두가 안 날 때다. 대부분 그 세 가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내가 불려갔다."

-남의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게 된 이유가 뭘까? 월급을 많이 받으면 저절로 동력이 생기는 걸까?

"돈을 많이 받는다고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월급쟁이지만 월급 받고 일한다는 생각을 거의 안 하고 살았다. 회삿돈을 내 돈처럼 아껴 썼고 이건 내 회사다 하는 마음이 있었다. 오너들이 나를 뽑은 것도 내가 그들 일을 마치 내 일처럼 해서였을 거다. 하지만 회사와 나를 지나치게 동일시한 것은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다가 번아웃을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번아웃은 평소에 예방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이 좋다. 짬짬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에 리프레시 방식을 많이 마련해놓으면 좋다. 예를 들어 나는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일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아주 뜨거운 커피를 끓여 마셨다.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자기만의 의식이 되면 정신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출장을 가더라도 미리 도착해서 산보를 하거나 노는 시간을 가져도 된다. 일상에서 자주 모든 것을 멈춰본다. 나만의 리프레시 방법이다."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 월급쟁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 크게 두 가지의 직업만 남을 것이라고 본다. 자본가 혹은 창업가. 돈을 굴리는 사람이거나, 직접 회사를 세우고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거다. 자본가는 극소수다. 결국 창업가가 되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고 ‘기획력’이 직업 능력의 핵심이 될 거다. 젊은 직장인들에게 '회사 일만 죽어라 하면 제일 바보'라고 말한다. 낮에는 회사 일을 하더라도, 밤이나 주말에는 돈을 써서라도 수많은 AI 툴을 써보고 내 아이디어를 직접 뚝딱뚝딱 만들어봐야 한다."

-조정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책을 쓰면서 직장생활 32년이 정리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동안 힘들었던 것이 회복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다시 일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공백기가 있었고 나이도 들었다고 느끼지만 다시 구직자의 초심으로 돌아가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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