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 면전에서 "일본은 기습을 잘 안다"며 '진주만 공습'을 언급했다. 호르무즈 해협 방어와 관련해 일본의 역할 확대를 압박했으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즉답을 피한 채 신중한 태도로 대응했다.
다카이치 일본 총리(왼쪽)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이란 공격에서 동맹국에 사전 통보를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며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언급했다. 미·일 동맹을 고려해 자제돼 온 민감한 역사 문제를 면전에서 꺼내 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 공격 전에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 특히 일본에 사전 설명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일본 기자 질문에 "우리는 기습을 원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며 "누가 일본보다 기습을 더 잘 알겠느냐. 왜 나에게 진주만에 대해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답했다.
초반에는 웃음이 나왔지만 곧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순간 눈을 크게 뜬 채 의자에 기대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그는 트럼프의 발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진주만 공격은 1941년 12월7일 일본이 하와이에 있는 미군 기지를 기습해 24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사건으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에 참전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이 날을 "영원히 치욕으로 남을 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후 태평양전쟁은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막을 내렸고, 일본은 1945년 8월15일 항복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016년 함께 진주만을 방문해 애도와 화해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진주만 공습이라는 '아픈 과거'를 서슴지 않고 농담처럼 꺼내든 것이다.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인 에릭 트럼프는 이날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역사상 가장 훌륭한 기자 응답 중 하나"라고 적으며 아버지의 발언을 두둔했다.
이날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방어와 관련해 일본의 역할 확대 필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는 4만5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미국은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며 "일본이 나설 것으로 기대하며, 실제로 나서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직설적이고 압박적인 협상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이에 대해 다카이치 총리는 이란의 핵 개발을 비판하고 미국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도, 파병 등 구체적인 지원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그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지역 안정을 해치는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회담 후 다카이치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있었다"면서도 "일본 법률의 범위 안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와 그렇지 않은 조치가 있어 이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는 자국 헌법과 법적 제약을 이유로 군사적 개입이나 파병에는 선을 긋는 취지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관세 협상에서 일본이 선제적으로 합의에 나섰던 전례를 들어, 이번에도 파병 문제에서 비슷한 결정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번 미일 회담에서는 파병 관련 언급이 없어 일단 한숨을 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