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원유 수출의 20%가 오가는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에게 '미사일'보다 더 강한 '비밀무기'가 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만 틀어뒤니 국제유가가 뛰었고 미국 정부조차 허지지둥대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인도 선박의 통과를 허용하면서 미국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무력화되고 있다. 되레 미국이 외톨이가 되는 모습까지 연출된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부 중국선박과 인도선박의 통행을 허용했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17일(현지시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 옛 트위터)에 "호르무즈 해협 상황은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정학적 지렛대로 삼는 행보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발언은 중국과 인도 선박이 이란 정부와 협의 끝에 호르무즈 해협을 유유히 통과한 뒤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모하마드 파탈리 주인도 이란대사는 이날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인도투데이 방송 콘퍼런스에 참석해 이란 정부가 일부 인도 선박의 해협통과를 허용했음을 확인했다. 중국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는 이미 국제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글로벌 국가들, 원유 조달을 위해 이란에 줄 서나
이란의 '선별적 통행 허용'에 글로벌 국가들이 이란에 줄서야 할 판이 됐다.
CNN에 따르면 이란은 중국 위안화로 원유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 호르무즈 해협 통과 허가를 허용하는 방안을 8개 나라와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위안화 결제를 통해 미국 금융시스템과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나라가 이란과 협상에 나서는 배경에는 국제유가 불안 때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JP모건 보고서는 "글로벌 원유 시장이 단순한 지정학적 리스크 평가단계를 넘어서 실질적 공급차질에 직면했다"며 "정유소 가동중단과 수출제한이 글로벌 공급망을 중대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AP통신은 17일 이란 전쟁 격화로 전 세계가 에너지 배급(energy triage)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바라봤다. 그동안 거론됐던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베트남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항행하는 유조선 모습. AI로 생성한 이미지
영국의 비즈니스 리스크 컨설팅 업체 컨트롤리스크의 린 응우옌 연구원은 AP통신 인터뷰에서 "에너지 사용을 아주 소폭만 제약해도 산업활동에 부담이 된다"며 "에너지 집약형 수출산업이 발달한 베트남의 경우 연료비 상승이나 절약조치가 공장가동률을 떨어뜨리고 생산비용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불안이 확산하자 역설적이게도 미국이 국제유가 급등을 염려해 이란의 석유 수출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이란 선박들은 이미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가고 있고, 미국은 그것을 허용했다"며 "미국은 세계에 안정적 공급이 이뤄지길 원한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그동안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무기로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은 여러 차례 나왔지만 실제 해협 봉쇄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중동정책 전문 싱크탱크 '워싱턴인스티튜트'는 이란의 호르무즈 선별적 통항 제재 카드를 미리 예견한 바 있어 주목받고 있다.
워싱턴인스티튜트는 올해 1월30일 리포트에서 "미국의 이란 지도부를 향한 군사적 타격만으로는 이란 정권을 즉각 붕괴시키는 어려운 일"이라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유조선을 선별적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스마트 통제 정책'으로 역내 불안정 책임을 미국에 돌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