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노력 못지않게 세상의 변화도 더 빨라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공방식을 넘어 새로운 혁신으로 도약해야만 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국내외 구성원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LG
구 회장은 오랜 기간 지속됐던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송에서 최근 긍정적 판단을 받아들며 LG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한 리스크가 한층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 회장이 강조했던 ‘혁신’을 흔들림 없이 실행에 옮길 동력이 갖춰진 것이다.
지배구조 리스크를 덜어낸 LG그룹은 전자·IT 부문의 포트폴리오 전환에 속도를 높여 올해를 실질적 도약의 원년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 회장이 연일 강조해온 인공지능(AI) 역량은 그룹 전체의 혁신을 완성할 승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상속재산 분할 소송 3년 만에 1심 승소, 큰 부담 덜었다
13일 재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LG 오너일가 세 모녀가 제기한 상속회복청구 소송 1심 결과가 나온 이후 LG그룹의 지배구조 리스크가 잦아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본무 선대회장의 부인인 김영식씨 및 두 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는 2023년 2월 상속재산을 다시 분할해야 한다고 구 회장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지난달 12일 1심에서 세 모녀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이 나왔고 세 모녀는 이달 초 항소장을 제출했다.
1심 재판부는 세 모녀가 2018년 상속재산 분할 당시 내용을 인지하고 협의를 진행한 점, 그 과정에서 최종 의사표시를 한 점 등을 이유로 세 모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 모녀가 새로운 근거를 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 재산분할이 끝난 시점으로부터 이미 8년이 지났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진행될 항소심 등에서도 구 회장이 유리한 결과를 받을 공산이 크다는 시선이 나온다.
이에 구 회장은 혹시 모를 지배력 약화 우려에서 크게 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초 세 모녀의 의도대로 민법상 법정상속비율(배우자 1.5, 자녀 1)로 상속재산이 다시 나눠지면 구 회장의 지분은 9.7%가량, 세 모녀의 지분은 모두 합쳐 14%가량이 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구 회장은 16.27%, 세 모녀의 지분은 7.99%인데 지분 구조에 적지 않은 변동이 벌어질 뻔했다.
이렇게 1심 법원 판단을 통해 지배력 약화의 가능성이 크게 줄면서 구 회장이 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된 셈이다. 현재 LG그룹은 최대주주인 구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지주사 LG 지분을 42.54% 보유하고 있고 그 아래로 사업회사를 둔 안정적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 실적회복은 이제부터, LG전자는 ‘글로벌 사우스’·LG디스플레이는 ‘올레드’로
LG그룹의 주요 전자·IT 계열사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실적회복을 바라보면서 구 회장이 강조한 혁신에 부합할 만한 포트폴리오 확장 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LG전자는 4분기 들어 분기 기준으로 9년 만에 영업손실(1090억 원)을 기록하는 등 1년 전보다 27.5% 감소한 영업이익 2조4784억 원을 올리는 데 그쳤다.
다만 올해는 당장 1분기부터 멕시코 공장을 활용한 북미 관세 정책에 적극 대응하고, 고부가가치(프리미엄) 제품 중심 매출이 확대된 데 힘입어 실적 개선에 성공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LG전자는 연결기준 영업이익 3조4555억 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보다 40% 가까이 뛰는 것이다.
LG전자는 최근 인도와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등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신흥국)’ 지역 성장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역 특화 제품 출시, 현지 사업 인프라 확장을 통해 이 지역 매출을 지난해 6조2천억 원에서 2030년 12조4천억 원까지 2배 늘리겠다는 청사진인데 최근 2년 동안 성장률이 20%인 점을 고려하면 공격적이면서 자신감 담긴 로드맵이다.
류재철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5대 과제 가운데 하나로 지역 포트폴리오 건전화를 꼽으며 “최근 기업공개(IPO)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인도, 기업간거래(B2B) 사업확대의 핵심 시장인 사우디, 현지 생산기반을 마련한 브라질”을 핵심으로 꼽았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부터 가시화하기 시작한 올레드(OLED)로의 체질개선 효과가 올해 들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연결기준 영업이익 1조3천억 원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2022~2024년 누적 영업손실 5조 원을 딛고 지난해 영업이익 5170억 원으로 흑자전환한 데 이어 이익 폭을 더 키우는 것이다.
정철동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도 올해 자신감을 내비친 한편 ‘기술 중심 회사’로 나아가자는 신년 다짐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정 사장은 12일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정기총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수익을 더 상향하는 쪽으로 가고 있어 올해 상반기에도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 연례 기술행사인 GTC 2026 참여를 놓고는 “제품 개발 쪽에 가상 설계디자인(VD)·인공지능(AI)을 사용하는 데 그곳에 엔비디아 툴을 쓴 것이 있어 초대받았고 앞으로도 제품 개발에 VD와 AI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 구광모의 AI, LG의 ‘혁신 완성’ 진짜 무기
올해 들어 LG그룹의 움직임 가운데 놓고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를 꼽자면 단연 AI가 꼽힌다. 4대 그룹 가운데 삼성·SK는 반도체 패권으로, 현대자동차는 휴머노이드 로봇 등 모빌리티 확장으로 폭발적 성장을 예고한 가운데 LG도 AI라는 기술자산으로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LG그룹은 올해 1월15일 국가대표 AI 모델을 뽑는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1차 단계 평가’에서 LG AI연구원 컨소시엄의 ‘K-엑사원(EXAONE)’이 경쟁 컨소시엄을 모두 제치고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면서 AI산업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LG AI연구원은 벤치마크·전문가·사용자 등 평가 3개 부문에서 모두 최고점을 기록했다.
구 회장이 2020년 말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AI를 점찍고 LG AI연구원이라는 전문조직을 설립한 뒤 5년여 만에 업계에서 손꼽히는 위치까지 도약한 셈이다.
LG그룹은 각 계열사가 보유한 하드웨어 경쟁력을 바탕으로 ‘피지컬 AI’ 시대를 구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여기에는 LG AI연구원의 거대 AI모델인 엑사원이 근본 경쟁력으로 자리하고 있다.
LG전자의 로봇 사업, LG디스플레이의 올레드, LG이노텍의 카메라모듈,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등이 로봇 산업의 개화와 함께 높은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가운데 엑사원이 로봇의 ‘두뇌’ 역할을 맡아 계열사별로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는 AI를 활용해 계열사 전반의 자체 사업 경쟁력도 높이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LG는 AI기반 신소재·신약 개발 플랫폼 ‘엑사원 디스커버리’를 활용해 화장품 소재, 배터리 소재, 반도체 소재 등에서 산업의 변화를 주도할 신물질을 발굴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구 회장의 LG그룹은 올해 들어 연일 AI 관련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4일 국내 최초로 교육부 공식 인가를 받은 사내 대학원 ‘LG AI대학원’을 개원하면서 “AI 기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사람들의 미소’를 설계하는 따뜻한 도구여야 하며 이는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며 기술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로 AI 시대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