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이승만 정부의 3·15부정선거를 규탄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결연한 외침 속에는 이 같은 선언이 등장했다.
앞선 3월15일, 경남 마산에서는 시민과 학생들이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와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시위를 일으켰다. 정부는 이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고 드디어 총을 발포하도록 했다. 이날 하루에만 7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유혈 민주화 운동 '3·15의거'는 이렇게 벌어졌다.
마산 시민들이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제1차 마산의거 시위를 벌이고 있다. ⓒ3·15의거기념사업회
고려대생들의 4월18일 시위가 4·19혁명의 방아쇠였다면, 3·15의거는 그 방아쇠를 당기게 한 도화선이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처럼 피를 뿌리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특히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민주화 운동을 홀대해 오기도 했다. 이 와중에 민주화운동의 '뿌리'인 3·15의거는 여러 차례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다.
15일은 3·15의거가 66주년을 맞는 날이다. 창원시의회는 이재명 대통령의 3·15의거 기념식 참석을 요청하는 대정부 건의안을 8일 채택했다. 건의안을 발의한 전홍표 시의원은 "3·15의거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라 강조했다.
◆ 40% 사전 투표함과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열사 : 3·15의거의 전개
3·15의거는 1960년 3월15일부터 4월13일까지 마산시(나중에 창원시로 통합)에서 전개된 대한민국 최초의 유혈 민주화 운동이다.
원인은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였다. 당시 '이승만'에 기표된 용지 40%를 투표함에 채워두고 3월15일 선거를 개시했다. 이를 간파한 민주당 마산시당 간부들이 선거 포기를 선언하고, 이후 경남도당이 선거무효를 선언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분노한 마산 시민과 학생 약 1만 명이 거리로 나섰다. 정권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뿐 아니라 총격까지 감행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3·15의거 공식 희생자 수는 16명에 달한다.
마산상고 학생들이 1960년 4월 "김주열군을 사살한 경찰을 학생에게 맡겨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며 마산경찰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3·15의거기념사업회
그중 김주열 열사의 이야기는 전국적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전북 남원에서 고교 입시를 위해 마산에 온 김주열 열사는 시위 당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시신에 돌을 매달아 마산 앞바다에 유기했지만, 4월 11일 그 참혹한 모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를 목격한 시민들의 분노는 4월13일 제2차 마산항쟁으로 폭발했다.이는 4·19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 역사 교과서에서 사라질 뻔한 '3·15의거' : 무관심·홀대의 방증
민주화 운동을 위해 이처럼 많은 이들이 희생됐음에도 오늘을 사는 이들은 '무관심'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3·15의거는 의거 발생 50년이 지난 2010년에야 겨우 정부기념일로 지정됐다. 3·15기념일은 33년 만에 1993년 마산시 기념일로 지정되고, 43년 만인 2003년에 경상남도 기념일로 지정됐다. 4·19혁명은 13년 만인 1973년, 5·18민주화운동은 17년 만인 1997년에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것과 비교된다.
2024년에는 다음년도에 사용될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3·15의거 관련 내용이 빠질 뻔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3·15의거 관련 단체들은 공동성명에서 "우리 현대사 최초의 유혈 민주화운동인 3·15의거는 2010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는데도 역사 교과서에서 지워져 후대에 역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립3·15민주묘지에 있는 '민주의 문' ⓒ국립3·15민주묘지
또한 3·15의거를 기념하는 대표 국가시설인 국립 3·15민주묘지에는 의거 공식 희생자 수가 잘못 표기돼있다. 진실화해위가 민주묘지 측에 희생자 수를 16명으로 표기하라고 권고했으나 2026년 3월 현재까지도 수정되지 않았다.
정치권의 관심도 저조하다. 3·15의거 기념식에 참석한 역대 대통령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 독일의 촛불·미국의 다리 행진: '뿌리'를 대하는 세계 각국의 모습
3·15의거를 향한 상대적 무관심에 외국의 사례가 눈길을 끈다. 독일과 미국 등은 역사적 사건의 시발점이 된 '지역 사건'을 대규모 행사로 기념한다.
독일은 매년 10월9일 라이프치히에서 '빛의 축제(Lichtfest)'를 연다. 1989년 니콜라이 교회에서 시작된 '월요 시위'가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의 도화선이 된 것을 기리기 위해서다. 시민 수만 명은 매년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켜고 당시의 평화 행진을 재연한다.
미국 시민들이 2025년 3월 9일(현지시각)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피의 일요일' 60주년을 기념하며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에서는 매년 주요 정치인들이 앨라배마주 셀마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직접 건넌다. 1965년 3월7일 셀마에서 시작된 행진 참여자들이 경찰의 잔혹한 진압을 겪은 '피의 일요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당시 시위대의 희생은 전 국민적 공분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미국 흑인 민권운동이 전국적으로 분출했다.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돼 미국 민권운동의 전환점을 인정받아,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 대중문화 콘텐츠 소재로도 자주 사용된다.
◆ "그 서러움은 마산 사람만 안다", 이제는 기억해야 할 때
지역민들은 한국에서도 이러한 기념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마산 출신 A씨(여·29)는 허프포스트에 "어릴적 3·15의거가 일어났던 불종거리 인근에 거주하며 할머니와 학교로부터 관련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며 "지금은 같은 창원이라도 3·15의거 당시에는 마산과 창원이 분리돼있던 때였다. 그 사건과 관련된 서러움은 마산 사람만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15의거가 4·19혁명의 불씨가 된 만큼, 지역만이 아닌 전국적으로 기념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