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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수준의 코스피 급등장 속에서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들 역시 꽤나 훌륭한 성적표를 받았다. 만년 '저평가 가치주'라는 꼬리표를 어느 정도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 최근 시장이 다시금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든든한 경기방어주로서 금융지주들이 버텨줘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지주사들에게 '밸류업'은 여전히 진행형이자 가장 무거운 과제 가운데 하나다.

[허프 생각] 4대금융지주 KB 신한 하나 우리 밸류업의 마지막 퍼즐 : 사외이사여,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주주들을 만나라
기사의 이해를 돕기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냉정하게 평가해 보자. 4대 금융지주 모두 '주주환원'이라는 과목에서는 최근 만점에 가까운 모범생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배당도 팍팍 주고, 자사주 소각도 화끈하게 한다. 문제는 밸류업의 진짜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지배구조(거버넌스)' 과목이다. 여전히 글로벌 스탠다드의 세련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촌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4대 금융지주는 외국인 지분율이 모두 60%를 훌쩍 넘는, 사실상 '글로벌 기업'이다. 깐깐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입맛을 맞추려면 거버넌스의 고도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리고 이 거버넌스의 핵심은 바로 '주주와의 투명하고 적극적인 소통'에 있다.

우리나라 금융사들의 지배구조 약점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사외이사들의 엉덩이가 너무 무겁다'는 점이다.

국내 4대 금융지주의 지배구조 보고서를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외이사가 직접 주요 주주를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는 공식적이고 구체적 무용담은 찾기 어렵다. 기껏해야 사외이사들의 개별 평가 항목에 "주주들과 소통했다"고 넌지시 적어놓은 게 전부다. 

사외이사들은 ‘외부인’의 시각으로 사안을 볼 수 있으면서도 회사의 중요 정보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존재들이다. 사외이사가 이사회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주 입장에서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식 창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회사의 공식 발표와 IR만 믿고 투자를 하라는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뭘 믿고 투자해?’ 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글로벌 금융사들의 사외이사들은 그야말로 '발로 뛰는 인싸'들이다. 특히 선임사외이사(Lead Independent Director)들은 주주와의 스킨십을 자신의 핵심 업무로 삼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DEF 14A’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우리나라로 치면 주주총회 소집공고와 지배구조 보고서가 합쳐진 형태의 문서인데, BOA의 리드 독립이사인 라이오넬 노웰은 이 문서에 게재한 주주 서한에서 이렇게 쿨하게 선언했다.

"이사회의 리드 독립이사로서, 나는 일 년 내내 주주들과 만나 지배구조 관행에 대한 이사회의 방향성, 그리고 책임 있는 성장을 위한 회사의 노력에 대해 논의한다."

심지어 "2024년과 2025년 초에도 기관 투자자들과 즐겁게 토론했다"며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BOA는 같은 공시에서 "리드 독립이사와 보상·인적자본위원장(사외이사)이 기관투자자 보유 지분의 약 47%를 대표하는 주주들과 '직접' 미팅했다"고 아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미국뿐이 아니다. 캐나다의 모기지·금융사인 'First National Financial LP'의 규정집(Mandate)에는 아예 "주주가 요구하는 경우, 적절한 상황에서 직접적인 상담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본인이 이용 가능하도록(available) 해야 한다." 명시돼 있다. 주주가 부르면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주주자본주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사외이사와 주주 사이의 소통은 이미 매우 오래된 어젠다다. RPMI의 기업 지배구조 담당 변호사인 데보라 길샨과 PGGM의 자문가 캐서린 잭슨이 하버드 로스쿨 기고문에서 "미국 기업의 사외이사들이 주주들과 소통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적절한 전략을 개발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 무려 2013년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10년도 더 전에 끝낸 토론을 이제야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2024년 삼일PwC의 사외이사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이내에 이사회 구성원(경영진 제외)이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일반 주주와 '직접' 소통한 사례는 고작 22%에 불과했다. 여전히 10명 중 8명은 의자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금융지주들이 '무늬만 밸류업'이 아닌 '진정한 밸류업'을 이뤄내려면, 이제 사외이사들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어내야 한다.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 주주들과 눈을 맞추고,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도 직접 들어야 한다. 

사외이사의 임무는 밀실에서 이뤄지는, 외부에서는 내용조차 알 수 없는 토론을 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외이사와 주주들이 ‘공식적으로’ 격식 없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정례화 하자. 이 자리에서 사외이사가 회사의 주요 사안들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주주들에게 가감없이 밝히고, 또 주주들의 목소리를 이사회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스피커 역할을 할 때, 비로소 K-금융의 거버넌스 디스카운트도 ‘옛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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